한국인의 정서를 구현한 새로운 개념의 풍경화를 그리는 이한우작가
본문
이한우의 선에 의한 사물의 윤곽 표출은 그러나 동양화의 준법에 바로 비견할 수 없다.
그에게 선은 준법이 지니는 사물의 실체 파악의 요체이긴 하지만 동시에 경계로서의 윤곽선이기 때문이다.
대상은 선으로 구획된다.
촘촘하게 엮어지는 선조의 구성은 자연이 지니는 혈맥과 같이 박동치는 느낌을 준다.
혈맥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화면엔 잔잔하나 활기찬 선조의 유동으로 인해 실재하는 생명감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90년대 후반에 오면서 그는 스케일이 큰 화면 속에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담아가고 있다.
이전의 화면에서 보이던 단면적인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풍경이다.
화면 속엔 초점이 없다. 이는 한 지점으로 눈길을 모은 방식의 구도가 아니다.
아래에서 위로 쳐다본다든가 위에서 내려다본다든가 하는 가파른 시점은 변화가 많은 만큼
긴장감이 강한 반면, 수평 시로 바라보는 시점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한우의 화면도 그지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화면이 우리들의 시각에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은
화면 속의 정경이 고향의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한우의 대폭의 화면은 이렇듯 우리들의 옛 고향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경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더욱 애틋하게 한다.
빠른 변화가 진행되는 우리 주변의 상황은 끝내는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산천까지를 하루아침에 파괴해 버린다.
변화지 않는다고 믿었던 산천도 급속히 바뀌고 있는 세상이다.
이한우의 화면이 우리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이렇듯 없어져가는
우리의 고향을 붙들어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그리던 고향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한우의 화면 속엔 우리가 그리던 고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옛날 모습대로 남아 있다.
또 하나 그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주는 감동은 서양의 매재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각적 문법을 지니는 데 있다.
그의 작품은 분류상 서양화라고 하지만 단지 매재만 서양의 것이지 그 속에 담긴 정서나 방식은
그야말로 토착적이 한국의 정서요 방법이다.
서양화의 토착화라는 방법이 여러 측면에서 논구되고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한우의 작업이야말로 뛰어난 토착화의 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 글: 오광수(국립현대미술관 관장) -
아름다운 우리강산 , 53 x 45cm(10호F) , 캔버스에 유채
이한우는 한국의 자연풍경을 그린다. 아니, 한국적인 자연풍경을 그린다.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수려한 한국의 산하를 한국적인 이미지로 채워 서정적이면서도 꿈같이 아름다운 세계를 펼친다.
한국인의 미적 감각 및 심성이 반영된 한국적인 자연풍경이다.
현실을 근거로 하되 조형적인 재해석을 통해 명료하면서도 간명한 인상의 한국적인 풍경화를 실현하고 있다.
그의 조형언어는 소박하면서도 이지적이며 세련된 미적 감각으로 현대인의 미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따라서 그의 풍경화는 우리로 하여금 이상향을 향한 달콤한 꿈과 환상에 빠져 들도록 유인한다.
이한우
1928년 경남 통영 출생
1948년 통영상고 졸업
1984년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미술교육) 졸업
1973년 한일미술교류전(일본 동경)
1975년 제1회 개인전(부산 목마화랑)
1980년 국전 추천, 초대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
1985년 현대 한국대표작가 100인전(미술진흥회)
1990년 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초대전(예술의전당)
1997년 인도정부 초청 한국현대회화전(인도 국립미술관)
2000년 프랑스 유네스코 미로미술관 초청 한국신비의 빛깔전(프랑스 유네스코본부 미로미술관)
2005년 프랑스 룩상브루 상원미술관 초대개인전(프랑스 오랑주리미술관)
2006년 이한우 회화 50년전(갤러리 미화랑)
1978년 제29회 국전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
1985년 통영시문화상 수상
2000년 보관문화훈장 수훈
2005년 서울특별시문화상 수상
2006년 프랑스정부 문화기사훈장 수훈
2009년 은관문화훈장 수훈
2010년 자랑스런한국인 대상 문화예술부문 수상
2000년 제1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분과심사위원장 역임
사단법인 구상전 회장 역임
한국미술협회 고문
국전작가회 회장
[평론]
이한우의 선에 의한 사물의 윤곽 표출은 그러나 동양화의 준법에 바로 비견할 수 없다.
그에게 선은 준법이 지니는 사물의 실체 파악의 요체이긴 하지만 동시에 경계로서의 윤곽선이기 때문이다.
대상은 선으로 구획된다. 촘촘하게 엮어지는 선조의 구성은
자연이 지니는 혈맥과 같이 박동치는 느낌을 준다.
혈맥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화면엔 잔잔하나
활기찬 선조의 유동으로 인해 실재하는 생명감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90년대 후반에 오면서 그는 스케일이 큰 화면 속에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담아가고 있다.
이전의 화면에서 보이던 단면적인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풍경이다.
화면 속엔 초점이 없다. 이는 한 지점으로 눈길을 모은 방식의 구도가 아니다.
아래에서 위로 쳐다본다든가 위에서 내려다본다든가 하는
가파른 시점은 변화가 많은 만큼 긴장감이 강한 반면,
수평 시로 바라보는 시점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한우의 화면도 그지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화면이 우리들의 시각에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은
화면 속의 정경이 고향의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한우의 대폭의 화면은 이렇듯 우리들의 옛 고향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경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더욱 애틋하게 한다.
빠른 변화가 진행되는 우리 주변의 상황은 끝내는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산천까지를 하루아침에 파괴해 버린다.
변화지 않는다고 믿었던 산천도 급속히 바뀌고 있는 세상이다.
이한우의 화면이 우리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이렇듯 없어져가는 우리의 고향을 붙들어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그리던 고향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한우의 화면 속엔 우리가 그리던 고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옛날 모습대로 남아 있다.
또 하나 그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주는 감동은
서양의 매재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각적 문법을 지니는 데 있다.
그의 작품은 분류상 서양화라고 하지만 단지 매재만 서양의 것이지
그 속에 담긴 정서나 방식은 그야말로 토착적이 한국의 정서요 방법이다.
서양화의 토착화라는 방법이 여러 측면에서 논구되고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한우의 작업이야말로 뛰어난 토착화의 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 글: 오광수(국립현대미술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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