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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Reproduction] 로이 리히텐슈타인 - 행복한 눈물[Happy tears]

큐알아트
2014.09.22 15:01 20,588 0

본문



명화 Reproduction


 



 


"다층적 감정을 가진 만화와,

만화 특유의 쿨한 표현방법이 갖는 긴장감이 나를 매료시킨다."







미국의 대표적인 팝 아트 미술가이다.



만화의 장면을 캔버스로 옮긴 작품으로 유명하다.

앤디 워홀 등과 함께 팝 아트의 대표적인 화가로

신문 연재의 통속인 만화를 캔버스로 확대해 그린 작품군으로 유명하다.

만화가 가지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선, 단순화 된 색채 등의 표현력을 유채로 표현했다.







 

 
로이 리헤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1923년 10월 27일~1997년 9월 29일)



미국 팝아티스트



경력

청동, 철판에 에나멜로 채색한 조각 사용

1970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

1960 만화를 주제로 인쇄의 망점(dot) 그린 작품 발표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평온한 유년을 보냈으며,

청년시절 "재즈" 에 심취한 일은 그가 후에

미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1961년 이후에 "만화" 를 차용한 최초의 팝 회화들을 그리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5년간 대학교수를 지내다 전업으로 전향한다.

 

1977년부터는 채색된 브론즈 조각을 시리즈로 제작했으며

"앤디워홀" 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팝아트의 창시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들]

아들의 생일 선물로

"미키 마우스" 를 그려주다 작품 구상에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던 당시의,

리헤텐슈타인은 "뉴욕 타임스" 지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형편없는 예술가들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 당시는 엄격한 엘리트주의 미술과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의 대세였던 터라,

벤데이 도트(망점)으로 인쇄된 "상업 만화 이미지" 를

캔버스에 옮겨놓는 리히텐슈타인의 시도는

당대의 시각에서는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주요 작품 주제는

크게 "로맨스" 와 "전쟁" 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는 만화책이 소녀용 순정만화와 소년용 전쟁만화

둘로 양분 되었으니 어찌보면, 작품속에서 당연하게 묘사되었던 것으로

"꽝!" 은 용맹한 주인공이 마침내 적군을 물리치는 절정의 순간,

모든 소년이 손에 땀을 쥐고 열광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묘사 한 듯하다.





 

팝아트는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인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한 사조로

예술성 자체의 의미라기 보다는 광고, 산업디자인, 사진술, 영화 등과 같은 대중 예술매개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대해 언급된 명칭이다.



"팝 pop"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경향이 있지만 "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경향이 유력하다.

즉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題材)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팝아트의 특징은 "개방" 과 "비개성" 으로 집약된다. 이미지의 대중화, 형상의 복제,

표현 기법의 보편화 등에 의해 예술을 개인적인 것에서 대중적인 것으로 개방시킨다.

팝 이미지는 광고, 상표, 만화, 영화등의 대중적 이미지를 한번 더 보기 위한 시각적인

재현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현대 인간의 감수성을 의식화한 것이다.



또한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는 구상적이지만 회화적 사고 그 자체는 추상성이 강하다.

팝아트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한다.

특히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스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세븐 업의 트레이드 마크,

그리고 디크트레이시의 연속만화 따위를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기호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했다.

팝아트에서 유의할 점은 그들의 모방된 사물들은 대체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이 시사성이나 정보 미디어로서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면, 또다른 한쪽은 오락, 취미, 쾌락과

같은 단순한 감각적인 자극제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만화는 인생의 다양한 모습들을

과장하고 단순화시키고 변형시킨다고

생각한 그는 대중적이고 진부한 만화의 이미지를

독특한 양식으로 작품화함으로써 명성을 얻었으며,

인쇄에 사용되는 "벤데이 도트" 의 망점 기법을

응용하여 간결하고 상업적인 독특한 작품을 제작했다.



 



"이미지를 어떻게 예술작품으로 환원할 것인가?" 란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진정한 팝아티스트였다.



"벤데이 도트(Benday-Dot)란?"

여러 개의 점으로 그림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인쇄업자 "벤데이" 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행복한 눈물 [Happy tears]



제작년도 : 1964년

종류 : 유화

기법 : 캔버스에 마그나펜(magna on canvas)

크기 : 96.5 x 96.5cm

소장처 :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작품설명]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은 우리나라에서는 워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였다.

그러나 몇 년 전, 그의 [행복한 눈물]이 대기업의 비자금 사건과 연루되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이후, 이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작품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그 가격이 충격적이었다.

오래된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아가씨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수십억 대를 호가한다니,

작가로서는 진정 ‘행복한 눈물’을 흘려 마땅하겠지만,

평범한 이들은 과연 이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팝아트’는 글자 그대로 대중문화(popular culture)와

미술(fine art)이 결합하여 탄생한 새로운 미술의 흐름으로,

1960년대 미국문화의 산물이다.



텔레비전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생산과 대량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본격적인 소비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상품들은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격렬한 경쟁을 시작했다.

눈을 현혹하는 포장과 로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상품 광고가 티비와 신문, 잡지, 거대한 광고판과 할리우드 영화를 뒤덮었다.



물건을 구입하고 재빨리 소모하는 방식은 문화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대중문화는 표피적인 오락을 지속적으로 제공했고,

소비자들은 일순간의 만족 이후에는 또 다시 새로운 자극을 원했다.

이처럼 생산 – 소비 – 폐기로 이어지는 짧은 순환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문화는 현재 우리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전달의 매체에 컴퓨터와 인터넷, 이동통신 등이 더해졌을 뿐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무언가를 구입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매체들은 커피일 수도 있고, 증시전망이거나,

올 여름의 히트곡일 수도 있는다양한 유무형의 상품들을 끊임없이 광고하며 소비를 종용한다.



자본주의사회의 우리 모두는 사실 ‘국민’이거나 ‘사회인’이기 보다는 ‘소비자’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의 팝아트는 이처럼 ‘소비자’의 삶 속에

파고든 일상의 모든 것들을 소재로 차용했다.



상품과 광고, 텔레비전과 영화, 만화책과 연예인 등,

‘대중 문화’의 영역에 속해있던 모든 것들은 ‘미술’로 변모하여

엄숙하기 그지없었던 미술관에 당당하게 입성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팝아트는 소위 고급 문화와 평범한 일상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고자 했던

지난 세기의 전위적인 미술가들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미술이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몰두했다면

팝아트는 이를 그대로 포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면, 즐기기라도 하자는 것이 팝아트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당대 대중문화의 총아, 만화책을 베껴 그렸다.

그는 인기 있는 만화책의 한 장면을 골라 세부를 수정하여

큰 캔버스에 유화로 옮기면서, 만화책의 전형적인 포맷은 그대로 유지했다.

단순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검은 윤곽선과 몇 가지의 원색으로 채워졌고

정사각형 틀 안에 말풍선과 함께 등장한다.



색면은 균일하게 칠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작은 점으로 채웠다.

요즘에도 값싼 신문이나 잡지책의 원색 도판을 잘 들여다보면

색점이 망처럼 빽빽하게 찍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이처럼 색을 점으로 분할하여 찍어내는

인쇄기법 벤데이닷(Ben-Day dot: 인쇄기술자였던 벤자민 데이의 이름에서 따왔다)을 모방하여 하나하나 손으로 점을 그렸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점의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물감이 살짝 번져 있는 등 대단히 인간적인 손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카메라나 판화와 같은 기계적인 기법은 미술가의 손을 모방하기에 급급했다.

영화나 만화 역시 미술가의 독창적인 표현과 미적 감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왔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를 모방하여 미술작품을 제작하면서,

기계적인 인쇄기법을 손으로 따라 그렸으니,

대중문화와 고급미술 사이에 엄연히 존재했던 위계질서를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그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로맨스이거나 전쟁이거나.

만화책이 결국은 소녀들이 보는 순정만화와 소년들이 보는 전쟁만화 둘 뿐이니 당연한 일이다.

만화책이란 오늘날의 연속극이나 마찬가지로,

로맨스든 전쟁물이든 대개 뻔한 줄거리여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처럼 앞 뒤 다 자르고 중간의 한 장면만 보더라도,

대략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법이다.



파란 많은 연인을 말없이 믿어주던 착한 아가씨가

결국에는 감동적인 프로포즈라도 받은 듯한 [행복한 눈물]이 그렇고,



마음이 떠난 것이 뻔한 연인이 데이트 약속을 까맣게 잊었더라도

애써 급한 일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음 어쩌면]이 그렇다.

[꽝!]은 용맹한 주인공이 결국은 적군을 물리치는 절정의 순간,

모든 소년들이 손에 땀을 쥐고 열광하는 감동의 장면일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물론 처음부터 대중들의 호응을 받고, 고가에 거래된 것은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나선 것은

1962년, 뉴욕의 유수한 화랑이었던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서 열린 [신사실주의전]에서였다.

이전까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과 윌렘 드쿠닝(Willem DeKooning) 등

뉴욕의 미술계를 지배했던 추상표현주의를 후원하던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의 변신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잭슨 폴락은 물감이 뚝뚝 흐르는 붓을 쥐고, 넓은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듯 온 몸을 움직여 대작을 만들어냈다.

그의 육체적인 궤적으로 뒤덮인 작품은 그 만이 갖고 있던 내면적인 갈등과 폭발적인 에너지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추상표현주의를 상징하는 강렬한 붓자국마저도

인쇄된 만화의 한 장면처럼 장난스럽게 변형시켰다.

그의 작품에서는 더 이상 고립된 스튜디오에 홀로 앉아

붓을 쥐고 고뇌하는 미술가의 전설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전 지식과 고상한 취미, 높은 학식을 갖춘 ‘교양인’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엇을 그린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미술품의 등장은

새로운 계층의 미술 애호가를 만들어냈다.



팝아트의 상업적인 성공은 소비사회의 미덕,

즉 마케팅과 프로모션, 전략적 세일즈의 파워를 보여준 새로운 세대의 딜러와 컬렉터들의 공이 컸다.

시드니 재니스와 레오 카스텔리(Leo Catelli) 등은 미술가를 발굴하여 ‘물건’으로 키워내는 데 천재적이었고,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의 전통적인 부호들이 아니라,

택시회사로 부를 일구었던 로버트 스컬(Robert Scull) 등의 신흥 부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팝아트를 적극 후원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여전히 당대의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무심했던 팝아트를 비난했지만,

대형 미술관과 갤러리, 수집가와 딜러들의 옹호 아래 팝아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리히텐슈타인이 보여주는 로맨스와 전쟁담은 식상하고 진부하며 통속적이다.

그러나 말끔한 원색으로 그려진 그의 커다란 캔버스는 ‘쿨’하고 ‘핫’하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단순하게 즐길 수가 없다.

사실 로맨스와 전쟁은 결코 진부하거나 통속적일 수 없고,

절대로 ‘쿨’하거나 ‘핫’하지 않다. 남녀관계는 대단히 근본적인 인간사의 갈등이며,

사랑과 욕망은 본질적인 감정이고, 전쟁은 극도의 폭력이자 최악의 공포 상황이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결별은 몇 번을 겪어도 아프고 구차하며 끈적거린다.

전쟁터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대단히 고통스럽게 죽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라도 절대로 식상할 수 없고,

폭력은 영화에서처럼 영광적이거나 감동적이 않으며, 더욱이 ‘쿨’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리히텐슈타인의 [펑!]은 천문학적인 가격의 미술품이자,

눈길을 끄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어, 눈부신 조명 아래 세련되게 단장된 미술관 벽에 걸려있다.

그 앞에서는 누구도 진지하게 전쟁을 논하지 않는다.

전쟁이 바로 이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팝아트는 진보적인 미술이 표방했던 사회비판적 기능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스스로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역사적 비극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소비한 후 ‘오-쏘-쿨’하게 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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