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산방의 작가 - 남농 허건의 산수화 입고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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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농 허건
동양화가로 호는 남농(南農)
1908 ~ 1987 |
이며 전남 태생이다.
조부 소치(小癡)허유, 아버지 미산(米山)허형을 있는 가계에서 태어나
호남화단(湖南畵壇)의 남종산수화의 맥을 이어왔다.
국전과 백양회(白陽會)를 통해 활동했으며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전남문화상과 목포문화상을 받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고
대한민국 문예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화풍은 갈필로 수묵담채의 詩情이 있는 山水를 그렸다.
1907년 6월 12일 전라남도 진도에서 출생하였다.
소치 허유 ,허련(小痴 許鍊)의 손자이며 미산 허형(米山 許瀅)의 5남 중 4남으로 태어났다.
1926년 남양 홍씨와 결혼하였다.
1927년 목포상업전수학원을 수료하였다.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첫 출품하여 입선하고,
1944년 동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하였다.
195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고
1960년 동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1976년 남농상(南農賞)을 제정하고, 동년 대한민국 문예예술상을 수상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은관)을 수상하였고 그해 운림산방(雲林山房)을 복원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이 되었고
1985년 남농기념관이 개관되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저명한 화가 소치(小癡) 허유(許維)를 할아버지,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아버지로 하는 3대째의 화맥을 이어온
조선 후기에서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남화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세계의 의미도 이 같은 회화사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87년 11월 5일 향년 80세로 사망하였다.
남농미술관
* 남농 허건 선생이 건립한 미술관, 남농기념관 *
남농기념관은 한국 남종화의 거장이자 운림산방(雲林山房) 3대 주인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8~1987) 선생이
1985년 5월 선대의 유물 보존과 한국 남화의 전통 계승 발전을 위하여 건립한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조선말엽의 시. 서. 화로 명성이 드높던 추사 김정희가 해동 제 1인자라고 까지 극찬하던
허련의 작품을 비롯하여 미산 허영,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등 운림산방 5대에 걸친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 밖에도 조선조의 명가로부터 현대의 대가 중진에 이르기까지 남종 선생의 제가들의 작품 300여점이 전시되어 있어
한국 남화의 명맥을 일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야와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토기, 도자기 등 200여점과 함께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도 전시되어 있어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예향 목포의 관광명소이다.
남농기념관을 찾아보는 것은 남농과 이 지방이 차지하는 미술사적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남종화가의 거장, 남농 허건 선생에 대하여 *
남농 허건 선생은 조선시대 말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 : 1808 ~ 1893)의 친손자이자
역시 유명 화가인 미산(米山) 허형(許瀅 1862 ~ 1938)의 넷째 아들로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평생을 목포에서 보내면서 한국 화단의 중심에 서서 많은 미술 활동을 하였으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다.
1981년에는 평생 수집한 수석 · 자기 · 목물과 운림산방 3대의 작품들을 목포시에 기증하여
향토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1987년에는 진도 운림산방을 사재로 복원하여
진도군에 기부 체납함으로써 우리 예술계에서 문화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본보기가 되었다.
선생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 문화훈장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1983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전통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 ‘진도에 가면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첫째가 글씨, 둘째가 그림, 세 번째가 노래 가락이다.
그중 첫 번째 두 번째는 전통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許鍊·1808∼1893)이 거처하던
운림산방(雲林山房)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의신면 사천리 첨찰산 아래 자리 잡은 운림산방은 그 이름처럼 산천이 수려하며 운무가 깃드는 그윽하고 유현한 곳이다.
영화<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된 운림산방 <정지윤기자>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내려 주었는데
추사는 소치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했다.
시서화(詩書畵)로 당대를 휘어잡은 소치였지만,
1856년 스승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소치가 말년을 보냈던 초가집은 새로 지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세월의 깊이를 대신해서 말해주는 노송들이 정원을 지키며 서 있고,
연못에는 연꽃들이 꽃을 피워 올릴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연못을 더욱 빛내고 있는 배롱나무는 고매함을 자랑하며 빈 몸으로 하늘을 받치고 있다.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첨찰산(485m)은 등산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5월부터 6월초까지 쌍계사 계곡을 중심으로 구실잣밤나무 꽃이 만발해
온 산이 금색물결을 이루고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가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숲 터널을 이룬다.
정상은 아는 사람들만 찾는 일출 감상 포인트.
쌍계사에서 출발해 1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에 서면 다도해 수많은 섬들 사이로 새빨간 해가 타오르듯이 떠오른다.
운림산방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한국 남화의 고향
진도 여행의 일번지, 운림산방이다. 진도 그림의 뿌리이자 한국 남화의 고향이 바로 운림산방이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남화의 맥을 잇는다.
허련은 진도 태생으로 이웃 땅인 해남 녹우당의 화첩을 보며 그림을 익혔는데,
대둔사에 머물던 초의선사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가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게 되면서 그만의 화풍을 만들어간다.
스승인 김정희가 죽은 후 허련은 고향으로 내려와 작품활동을 펼치며 한국 남화의 맥을 형성한다.
남화 또는 남종화라고 불리는 화풍은 전문 화원들이 그리던 북종화와는 대비되는 그림으로
수묵을 가지고 담대하면서도 자유로운 형식으로 선비의 마음을 담아 그리는 산수화를 말한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해 눈에 익은 연못이 보이고 뒤로 허련이 살았던 운림산방이 보존되어 있다.
전시관에서는 허련의 작품을 비롯해 그의 손자인 허건의 작품까지
남화를 대표하고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과 함께 있는 진도역사관에서는 진도의 옛 모습에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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