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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ing Village:
이경임의 童心 + 風景畵
長江 박옥생 (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1. 도시와 칠보(七寶), 그 로맨틱 만남
칠보공예의 작가 이경임은 마을 풍경 시리즈들로 새롭게 선보인다.
그의 마을은 서울의 오래된 집들이 이야기를 하듯 모여 있으며 소담한 삶의 표정을 담고 있다.
카페, 갤러리, 작은 공방들이 모여 있는 삼청동이나 가회동, 인사동은 작가가 사랑하는 공간들이다.
낡고 오래된 한옥의 지붕들이 솟아오르고, 그 중첩된 구조물들 사이사이로 골목들이 들어 앉아 있다.
실제의 간판과 집들을 넣고 그 실제는 꿈처럼 이합집산하고 구축화되어
기억의 언저리를 부유하는 꿈같은 풍경으로 승화된다.
이 과거와 현재가 밀집된 집들 위에 커다란 해와 달이 빛난다.
작가는 큼직한 유리를 구워 태양을 올리고, 칠보를 부착하여 달을 만든다.
이 커다란 해와 달이 뜬,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삶의 지붕들은 자신만의 삶의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낡고 오래되고 온갖 꿈들이 중첩되어, 골목하나하나에 추억이 서리어 아득하고 그리우며
생각하고 말하는 우리의 마을, 서울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대 화가들에게 도시는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폭로하고 증언하고 기록하는 주제이지만,
이와 다르게 작가의 도시는 꿈의 도시이다.
그 도시는 중첩된 기억이며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행복이다.
그 행복의 시선이 머문 자리엔 낮도 아닌, 밤도 아닌 우주적인 시간과 공간이 결합하여
내밀한 공간들로 완성된다.
그것이 이경임의 동화 같고 행복하고 낭만적인 서울 풍경이다.
사실, 작가에겐 오랜 유학생활과 유년기를 훌쩍 뛰어넘은 시간 속에 자리한
서울의 단상이 일정부분 괴리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업들은 유학생활 중에서도 천착한 주제인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존재성을 찾기 위해 밟고 지나 온 여정들과도 동일한 듯하다.
[Dreaming Village] 40 x 25cm (약6호) 캔버스에 혼합재료
Dreaming Village
그 여정으로서 현재의 작가는 시간의 무게를 올리고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도시 개발에 밀려 언젠가는 사라질 낡은 집과 삶의 소소한 풍경 속에서,
자신이 머물고 살아가는 애뜻함이 묻어 있는 흔적들을 풍경 속에 집어넣고 있다.
이러한 그의 풍경 속에는 창문 하나하나에 밝은 긍정과 노랑 빛 희망이 흘러나온다.
작가에게 있어 행복하고 달콤한 집적된 집들은 자신의 자아가 함축되거나 몰입된 대상,
즉 작가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노랑 빛 희망과 건강하고 밝은 기운이 넘쳐흐르는 서울의 풍경은 작가의 삶을 우의화(寓意化) 시키고 있는 듯 하다.
그 각각의 집들은 어쩌면 자신이 소중히 품고 살아 온 삶의 가치관일 지도 모르며,
사랑스런 가족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얽히고설킨 도시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작가가 앓고 있는 그리움의 모습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듯하다.
유리를 가마에 굽고 정교한 세공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내는 칠보공예는
작가가 오롯하게 빚어내는 삶의 지혜와 보석 같이 빛나는 정신의 숙련된 완성과 성숙을 보여주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한 작가에게 다가온 달콤하게 변환된 도시의 풍경들은 일정부분 동일한 가치를 느끼게 해 준다.
서울 그 모던시티의 변화의 단상과 징후들은 어쩌면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성인이 된
모든 이들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trauma)로 남아 있는 듯하다.
거기에 작가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집의 몽상가(夢想家) 그리고 동심(童心)
이러한 작가는 상처의 치유로서 무의식에 존재하는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으며
그 독특하고 향수어린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보석을 세공하고 완성된 하나의 가치와 추억들로 만들어 내는 것처럼,
그들의 풍경에서 자신이 꿈꾸고 그리워하는 추억의 풍경으로 회귀시키며
또한 그 과정에서 마치 유년기로 되돌아 간 듯, 행복과 휴식과 같은 내밀하고 소중한 가치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환부에 고약을 바르듯 자신의 풍경 속에서 치유하고, 사회와 구조,
상징과 제도로서의 작가가 짊어진 현실로부터 일정부분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는 지도 모른다.
사실, 이를 두고 라깡(Jacques Lacan)은 고착화된 현실의 상징계로부터 유기적이고 덜 사회화된
상상계로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작가에게서 보이는, 집을 통한 치유와 자유의 가시화는 시인과 화가들에게서 드러나는 아니마(Anima)의 몽상이기도 하다.
이 아니마의 몽상은 휴식과 어머니의 따뜻한 품으로서 향하는 꿈과 이미지들인데,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피에타 상이나 관음보살의 풍만한 모성의 형상화들도
그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되는 예(例)일 것이다.
이는 모두 우리를 어머니가 존재하고 따스했던 유년기로 되돌리는 강력한 이미지이자,
휴식과 안락을 극대화 시키는 이미지들인 것이다. 이러한 안락, 기원으로서의 이미지는
집이나 작은 내밀한 공간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확장된 영역으로서 대지(大地)가 등장하고
대지의 의인화가 마리아, 관음보살과 같은 종교적 상징들인 것이다.
이것은 삶의 진실과 본질로 향하는 기원과도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 가운데 집에 관한 상징과 기원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것은
미야자끼 하야오의 만화영화에서 뚜렷하게 간취되고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집이 갖는 기원성, 상징 그리고 내밀한 무의식이 융합되어
아름답고 서정적인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이경임 작가 또한 하야오의 만화에서 보여주듯 구축되고 중첩된 집들의 형상들을 쫒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의식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직도 숨쉬는 오롯한 동심(童心)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자신의 공방이 꿈과 같이 제일 높은 곳에 날아오르고,
지난 과거의 골목과 동네의 형상이 마을을 뛰어 다니듯, 술래잡기 하듯
시간과 과거가 묘하게 겹쳐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빛나는 지난 시간과 축적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순수한 아이 적
휴식으로의 아니마를 그리워하고 있다.
작가의 화면은 서울의 꿈이 함축되어 있고 또한 작가의 희망 그리고 소담한 집과 하늘과 태양과 달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경임의 풍경화는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잔잔하고 시적인 감동을 준다.
마치 이들은 꿈을 꾸듯 행복한 잠을 자고 있다.
그것의 풍경이 이경임의 동심으로 가득한 서울의 풍경화이다.
■ 이경임 (Lee, Kyung-Im)
학력
|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 國立東京學藝대학교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조형미술전공졸업
| 한양대학교 대학원 금속디자인전공 박사
주요경력
| 2008 한독 문화교류 괴테연구소 초대 개인전
| 2008 칠보 3인전<칠보, 세 사람의 생각> (경인미술관)
| 2010 이경임 개인전 <칠보, 그리고 그리(畵)고...> (갤러리 토포하우스)
| 2011 이경임 개인전 < in > (파란네모갤러리)등 다수
현재
| 인하대학교 출강
[Carol 1972] 35.5 x 46cm (약 8호)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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