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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들의 소장품판매 - 류경채,안창홍,임직순,박고석 작품소개

큐알아트
2016.10.13 20:14 1,005 0

본문







[계절의 여운] 45.6 x 38cm (8호F)     Oil on canvas



류경채  <제1회 국전 대통령상 수상자>

    1920 - 1995 
   



경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운영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창작미술협회 회장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수상

1995금관문화훈장 1992제1회 오지호미술상 19853.1문화상 1981대한민국예술원상 1980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77국민훈장 동백장 1956서울특별시문화상 연도없음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연도없음제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연도없음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연도없음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1949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1940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그의 작품 세계는 사물의 재현에서 벗어나 회화 자체의 조형 논리와 구조에

눈을 돌려 ‘추상’ 양식을 도입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이한다.



크고 작은 추상 형태와 색면들이 채워진 화폭에 산발적으로 적용된

마티에르에서 당시 ‘앵포르멜’의 화풍이 류경채의 변신에 견인차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점쳐보게 한다.

속도감 있고 다소 격렬한 필법을 사용했으나 단색조로 환원시킨 표면에서 그

의 조형 어법이 어떤 극점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준다.



표면과 지지대, 겉과 안, 공간의 외부와 내부 또는 표면과 표면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관계’시킴으로써 이분법을 해소하려는 내면을 드러낸다.






비평가들은 가라앉은 중성적 모노톤으로 작업하며 색채보다는 드로잉, 즉 ‘선묘’를 중시한다.

이러한 ‘선묘’는 거의 무작의적이고 기계적인 반복 행위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반복 행위는 색채의 단순화와 함께 작가로 하여금 명상적인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물질을 넘어선 정신을,

어떤 우주적 해방감과 우주의 리듬,

혹은 기(氣)의 세계를 향수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고 평가했다.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한국화가 류경채(1920~1995)는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제1회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화가로 발돋움한다.



이후 대학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작품활동을 이어가 한국화단의 구심점이 됐다.



현재 서울 왕십리 근처 풍경을 그린 ‘폐림지 근방’(1949)은 그 국전 수상작. 광복 후

대지에서 피어나는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조형이념으로 재해석해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했다.



오는 11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광복 70년 기념 한국근대미술 소장품’ 전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유채. 123.8×93.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제공.







[무제] 32 x 41cm (6호F)     Acrylic on Canvas

본인이 기억하는 순간부터 붓을 잡고 있었다는 안창홍은 평생 화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가정형편상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독립해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살았던 터라 남들보다 조숙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이미 규칙적인 생활과 제도가 안 맞는다고 판단한 그는 학업을 포기하고

공사판, 부산 자갈치 시장 등을 전전하며 생생한 삶을 체험했다.

1년간 그를 찾아다닌 미술선생님 덕분에 학교로 돌아가 장학생으로 고교를 졸업했다.

그때 안창홍은 “예술이라는 것이 학교에서 얻는 지식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당시에 대학을 가는 대신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작업 활동을 하고, 작품도 팔았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우연히 자신의 작업실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취미생 몇 명을 가르쳤는데, 이후 입시생도 들어오고

대학 진학 성적이 좋아서 학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학 입시제도가 싫어서 대학을 가지 않은 그에게 이러한 상황은 일종의 시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제도에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고 이에 만족해야만 하는가.

결국 그는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89년 서울로 홀연 올라오게 되었다.


그는 처음 서울에 와서 화곡동에 머물다가 8개월 만에, 경기도 가장 끝자락의 현재 작업실로 들어왔다.

서울에 있으면 동료 작가들 만나서 즐겁고 좋았겠지만,

그 또한 그에게 불안한 요소였던 것 같다.

대신 그는 신화적 작가의 삶을 선택했다.



고립되고 처절히 외로운 삶을 체험하면서, 예술을 고뇌하는 자의 모습 말이다.

이 시기 그는 <상황과 인식 회화전>(1982), <시대 정신전>(1983) 등에 소개되며

<현실과 발언전>에 동참하게 된다.

그는 ‘현실과 발언’이 잘못된 체제에 저항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향하는 집단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개인적 욕망이 많은 집단이었다고 회고한다.

구호는 시대 정신이었지만 작가들 자신은 개인의 헤게모니를 위한 매개체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실망했다.

항상 어떤 집단과 제도를 이탈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었던 것 같다.



욕망을 배설하는 화가의 똥



그의 작품은 실로 변화무쌍했다.

어떤 시기에는 더없이 환하고 자극적인 색채로 가득 차 있는가 하면

또 다음에는 흑백의 모노톤으로 장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에는 그런 변화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내 그림은 상당히 국내의 정치사와 맞물려 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들이 결국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생각들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저항에 대한 것, 현실비판적인 것들을 담고 있다.



안창홍

1953

삶의 진통을 그리는 작가"



금호,가나,사비나,조선일보,부산 시립,공간화랑등 30여회 초대전 및 개인전

이인성 미술상,이중섭 미술상,부일미술상,프랑스 카뉴 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등

실력으로 미술계의 중진이 된 그는 인간의 본겅을 초현실적으로 그리는 작가이다.







1953년 경남 밀양 출생 Born in Miryang, S. Korea in 1953



개인전 

2009 제25회 안창홍 : 시대의초상 (부산시립미술관 기획/부산)

2006 제24회 안창홍개인전 (공간화랑 초대/부산) 

2006 제23회 안창홍작품전 (사비나미술관 초대/서울) 

1999 제15회 안창홍작품전 (노화랑, 갤러리사비나 초대/서울) 

1995 제11회 안창홍작품전 (나무화랑 초대/서울) 

1993 제 8회 안창홍초대전 (금호미술관/서울) 

1991 제 7회 안창홍초대전 (샘터화랑/서울) 

1986 제 3회 안창홍작품전 (한강미술관/서울, 사인화랑/부산) 

1981 제 1회 안창홍작품전 (공간화랑/부산, 청년작가회관/서울) 



그룹전 

2008 봄날은 간다 (광주시립미술관/광주) 

2007 한국미술의 리얼리즘 - 민중의 고동 (반다지아, 후쿠오카, 미야코죠노시립미술관 등 5개미술관 순회전/일본) 

2007 안창홍 정복수 : 똥과 창자 그리고 자존과 해방 (아트싸이드 기획전/서울) 

2006 한국 현대미술 100년전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05 당신은 나의 태양 : 한국미술 1960~2004 (토탈미술관) 

2004 금호미술관 개관기념전 (금호미술관/서울) 

2004 조국의 산하전 : 중심의 동요 (공평아트센타/서울) 

2004 부산비엔날레 (부산시립미술관/부산) 

2003 그리는 회화-혼성회화의 제시 (영은미술관/경기도) 

2003 제1회 북경비엔날레 (북경) 

2002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3 : 집행유예 (8.15시민공원/광주) 

2001 한국미술2001; 현대 회화의 복권 (국립현대미술관/과천) 

1998 창-안과 밖 (광주시립미술관 초대/광주) 

1998 BODY in Painting (한림미술관 초대/대전) 

1997 현대미술 "97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서울) 

1995 해방 50년 역사전 (한가람미술관/서울) 

1994 민중미술15년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서울) 

1987 반고문전 (그림마당민 초대/서울) 

1986 현실과 발언전 (그림마당민/서울) 

1986 우리시대의 초상전 (한강미술관 초대/서울) 

1984 제2회 시대정신전 (부산/마산/서울) 

1984 "83 문제작가전 (서울미술관 초대/서울) 

1983 젊은 의식전 (관훈미술관/서울) 

1983 "서울의 봄"서울미술관의 작가전 (서울미술관 초대/서울) 



수상 

2001 제1회 부일미술대상 수상 (부산일보사/부산) 

2000 제10회 봉생문화상 전시부분 수상 (봉생문화재단/부산) 

1989 카뉴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카뉴/프랑스)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구삼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출판물

「어둠 속에서 빛나는 청춘 - 안창홍의 그림세계」 눈빛, 1997 










[풍경] 53 x 45cm (10호F)     Oil on canvas



개인적인 작품으로는 실내의 여인상, 꽃과 소녀, 꽃 중심의 정물, 계절색의 자연 풍경,

항구 또는 어촌과 바다의 정경 등을 주제 삼으며 자연애의 서정적 시각과

색채적 표현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낸 필치의 유화 창조가 두드러지게 이루어졌다.

그 색상의 작품들은 자연적인 주제성을 넘은 회화적 자율성의 내면을 구현시킨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그 성향이 더욱 자유롭게 추구되었고,

말년에는 표현을 최대한으로 단순화시킨 붓놀림과 명쾌한 선택의 색상으로

자연미의 생명감과 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강조하려고 하였다.

특출했던 색채적 표현주의 화가로서 각별한 평가와 많은 애호가들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상응한 많은 역작을 남겼다.


화단 활동으로는 1958년의 목우회() 창립 회원,

1982년 이후에는 미술 단체 구상전() 가담 및 회장을 역임했다.




임직순

1921년 ~ 1996년



조선대학교 교수, 한국문예상 미술본상(대통령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미술 부문 본상(대통령상), 서울시문화상



광복 후 1949년 제1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가을 풍경」과 「만추(晩秋)」가 입선됐다.

6·25 전쟁으로 중단됐던 국전이 1953년 휴전과 함께 재개되자 해마다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1956년에는 실내의 소녀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화실」이 문교부장관상을 차지했고,

1957년 제6회 국전에서는 역시 실내의 소녀를 주제 삼은 풍부한 색채 구사의 「좌상」이 대통령상을 타며 크게 각광을 받았다.


1958년과 1959년에도 특선에 오름으로써 추천 작가가 되었고,

1963년부터는 초대 작가로 심사 위원이 되기도 하며 대표적인 국전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는 한편, 1955년의 대한미술협회전에서는 불상을 그린 유화 작품이 문교부장관상을 차지했다.

1961년에 광주의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74년에 정년 퇴임할 때까지

14년간 광주에 거주하며 두드러진 서정적 색채 화가로서의 작가상을 빛냈다.


그러나 그의 작품 발표와 미술계 활약은 줄곧 서울과 직결되어 있었다.

조선대학교에서는 선임 교수였던 오지호(吳之湖)처럼 색채 존중의 기법을

학생들에게 지도하여 자연주의 성향의 호남 서양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山] 33.4 x 24cm (약 5호) oil on wood



산(山)의 화가라 불리는 박고석은 반 아카데미즘의 계열에 속했던 작가로

1950년대 모던아트협회의 창립으로 모더니즘 계열의 작업을 고수했다.



1970년대 들어와서 주로 산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그려 왔는데,

대상에 대한 느낌을 속도감 있는 붓질과 감동적인 물감의 흔적을

재빨리 화면에 쏟아 부어 산이 갖는 어떤 내밀한 정서를 표출한다.



박고석



1917 평양 출생



[학력]

1939 일본대학 미술학부 미술과 졸업

개인전

1946 개인전 (동경 팔척(八 ) 화랑)

1952 개인전 (휘가로 다방부산)

1974 개인전 (공간미술관)

1984 개인전 (현대화랑)

1990 고희기념 화집 발간 및 전시회 (현대화랑)

1994 박고석출판전 (샘터화랑, 부산공간화랑)



[단체전]

1940-1942 격조전(格調展), 창립동인전 연 3회출품

1951 현대한국 회화전(부산)

1952 기조전 창립동인전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 한묵, 이중섭)

1953 5인전 (박고석, 손응성, 이봉상, 이응로, 이정규)

1956-1962 Modern Art 전 창립, 연6회 출품

1967 구상(具象)전창립(1967년까지 출품)

1970-1972 한국교류전 출품(동경, 서울)

1984 종군작가전, 미협전, 국전초대작가전

60년대 한국현대회화전

현대작가 100인전 출품


 


[수상]

1984 "한국문화예술상수상" 대통령상

1987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수훈"



[역임]

195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55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과장

1965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1970 한국미술협회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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