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잭슨폴락 이성근화백의 신작소개 -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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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피카소'나 '잭슨폴락'으로 불리는 문재 이성근의 자유분방한 작품을 만나다 !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
이당 김은호미술상 수상(2003년)
미국 워싱턴 다다모힐 갤러리 전속작가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건국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화가 이성근...동양 회화로부터 출발했지만 결코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고
서구적이고 초현대적인 기법의 감각으로 무장한 작가다.
혹자는 그의 작품을 보고 미국화가 잭슨 폴록을 떠올리기도 한다.
세계적 미술평론가 그레엄 설리번 교수는 이 화백의 그림을 보고
"마치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평한 바 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의 사사를 받은 이성근은 운보 고(故) 김기창 화백과 함께
화단 '후소회'에서 활동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지냈고 이당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6년부터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중국 등 해외에서도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그의 작품은 영국 황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집무실을 비롯해 세계적 명소 및 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전규태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해체와 버무림의 미학'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山] 76 x 116cm <약 50호> 수묵 채색
이성근 작가의 그림은 말로 쉽게 표현 할 수 없는, 그저 보이는 대로 느끼게 했다.
먹(墨)의 퍼짐은 비움이었고 먹(墨) 속에 어우러진 칼라는 채움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화합을 말하고 과거와 현재의 형상을 말해준다.
은근함과 강함, 비움과 채움 그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 인생인 듯 여겨진다.
이성근 작가의 작품의 주제 속에는 ‘환희’가 많다.
삶의 ‘환희’ 즉 삶의 자유로움을 드러냈다.
간혹 오묘한 아릿함도 있다.
하지만 그 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기쁨이 된다고 그림이 말한다.
[시사 TIME 기자와의 대담 발췌]
예술은 보고 듣는 이에게 정서의 아름다움을 주고 삶을 풍부하게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퍼 낸 영감으로 꽃을 피워내는 사람이다.
그 예술의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긴 생의 고뇌와 목마름이 있었을까?
남모르는 아픔과 슬픔이 삭아 자양분이 되고 그 속에서 예술의 혼은 꽃 피는 것이다.
이성근 화백은 현재 한국화단을 이끌어 가는 거목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예술가이기에 자신의 존재가 아름답기를, 생각이, 철학이,
인생이 아름답고 그가 그려내는 그림이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그림을 통해 진정한 예술의 미학을 드러내고 삶의 가치를 구현하는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투명한 영혼의 울림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느낌으로 그리는 그림
미술평론가 김상철 씨는 “이성근의 작품은 새로운 조형을 드러내지만
낯설지 않고 내면에 울려 퍼지는 예혼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그의 화실은 금빛 가을 햇살 아래 고즈넉했다.
마른 잔디밭을 깔고 누운 화실 안은 벽에 걸린 작품과 상 위에 펼쳐진 물감들로 창조의 분위기가 그득하다.
해학을 담은 호랑이, 홰치는 닭, 질주하는 말, 여인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해학적이고 추상적이면서 아름답고 활기차며 소망으로 넘쳐난다.
수묵으로 펼치는 그의 그림이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음은 암울한 세상에서 만나는 눈부신 빛이 아닌가.
그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장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장르가 그의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동양화가라고 생각지 않고 그냥 회화를 그릴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자유로워야 작품 속에도 자유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정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순수한 느낌
그대로 표현하던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이다.
화필을 잡고 오로지 한길을 달려왔지만 오로지 자연이고 싶은 마음에
내려앉은 세상 먼지들은 투명한 영혼의 창을 오염시키곤 했다.
그림을 잘 못 그리던 어린 시절에는 느껴지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슬플 때는 하늘빛을 회색으로 칠하고 즐거울 땐 빛나는 색감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사물을 느낌 그대로 표현하던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순수를 지향하는 예술가의 발로이리라.
통속적이고 관념에 매이는 것을 거부하다
그는 이당 김은호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했다.
김은호 선생은 20대에 궁정화가가 되어 순종의 초상화를 비롯 창덕궁에도 많은 그림을 남긴,
근대미술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김은호 선생은 예술원 회원 운보 김기창, 장우성, 이유태 등 쟁쟁한 문하생들을 길러낸 위대한 스승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이를 간파한 그의 매형이 김은호 선생에게 그를 의탁하고 미술 수업을 받게 하였다.
수년 동안이나 공부를 했지만 성생님은 한 번도 그의 그림을 칭찬해주지 않아
딜레마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성근이가 곧잘 그림을 그린다고 칭찬하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의 마음에 이성근이란 이름의 제자가 각인 된 것을 안 이후부터 더 열심히 수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일정한 형식과 내용을 고집하지 않고 한지 위에 파격적인 수묵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한다.
자연만이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도 자연이 되기를 바란다.
자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그저 감성이 이끄는 대로 물 흐르듯이 따라가는 자연인 이성근 화가가 되기를 원한다.
통속적이고 관념에 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과 맥락이 닿아있다.
신앙이 있기 전에는 여인들을 절절히 사랑하였다.
젊을 때 성령체험도 하였지만 나중에 세상에 치우쳐 하고 싶은 대로하면서 살았다.
육적인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공허를 메울 수가 없었다.
그에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보다도 여인에 대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혼의 아름다움,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승화된 사랑을 꿈꾸고 있다.
그가 신앙을 가지게 된 동기도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를 찾는 데서 비롯되었다.
예술의 의미, 깊이를 부여하는 가치의 근원은 어디일까?
그는 그것이야말로 초월적인 존재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백의 평안을 찾아
수년 전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있었다.
콜롬비아 대학은 미술이 단연 최고인 대학이다.
학생들은 자부심이 대단했고 초빙된 교수들을 난해한 질문으로 곤경에 빠뜨리기 일쑤였다.
그는 스스로 학생들에게서 마음을 비웠다.
“나는 그림을 그린 뒤 20년이 지난 후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놀랐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화가다운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십 수 년 후에 또 다른 소원이 생겼는데 그것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었다.
손의 표현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표현하고자하는 욕심이 생겼다.
내 언어가 내 몸짓이 내 존재 자체가 예술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자 교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동양의 그림에는 여백이란 것이 있다.
그 여백은 그림으로 하여금 숨을 쉬게 한다.
내 안에도 그런 여백이 있어 숨을 쉬게 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너무나 진지하게 경청을 하였다.
학생들이 강의 교수 중 한사람을 선정하여 그림 전시를 하는데 이성근 화백이 선정되어
그는 한 달간 기획전을 가지게 됐다.
그의 작품은 지금 워싱턴 주청사를 비롯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집무실과 세계 유수한 곳에 작품이 소장됐다.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이성근 화백 현장 드로잉 퍼포먼스에선
미술과 음악의 적극적인 접목을 시도하여 큰 호응을 얻었는데,
가수 남진·정훈희·바리톤 여현구씨 등 예술을 사랑하는 음악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백의 평안이 있고 자유를 꿈꾸는 영혼이 깃들어있다.
그 평안과 자유를 꿈꾸는 영혼은 그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머물고
그의 그림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게 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승화된 사랑을 꿈꾸는 화가 ‘이성근 화백’ |작성자 장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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