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작가의 신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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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 張勃 ]
교육에 힘을 썼으며 만년에는 미국에서 살며 동양적 비구상화 계열의 작품을 남겼다.
1901년 인천에서 출생하였다.
초명(初名)은 장지완(張志完)이고 호는 우석(雨石)이다.
2공화국 때 총리를 지낸 운석(雲石) 장면(張勉:1899~1966)의 친동생이다.
1922년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1925년 귀국하였다.
초기에는 한국 천주교회를 위한 성화 작업을 많이 하였고, 1934년 조선미술전람회를
거부한 작가들의 모임인 목일회(牧日會) 창립전과 1937년 목시회(牧時會) 회원전에 참여하였다.
또한 김복진·안석주 등과 속칭 선전(鮮展)이라 불리는 조선미술전람회를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켰으나 일본 경찰의 탄압과 이간책으로 실패하였다.
8·15광복 후에는 한국사실작가회원전·한국현대서양화대전 등에 출품하였다.
이어 대한민국예술원상·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작품 활동보다는 교육에 힘써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과 중앙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미국으로 가서 생활했으며 동양적 비구상화 계열의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12사도상》 《성 김대건 신부상》 《작품 A》 《작품 3》 등이 있다.
1996년 서울대학교 개교 50주년 행사 때 '자랑스런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으며, 동상이 세워졌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며,
1961년까지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미술계와 미술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2공화국 총리를 지낸 형 장면이 5·16 군사 정변으로 실각한 뒤에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여생을 보냈다.
1996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고, 교내에 흉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미술대학 갤러리 '우석홀'은 그의 호를 딴 것이다.
2001년 4월 8일 오전 4시(한국시각 오후 6시)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10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인물] 24.2 X 33.5cm (4호F)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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