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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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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으로 인간존재의 연민과 우수를 그린 작가 - 변시지 "

큐알아트
2014.09.25 16:31 1,166 0

본문

 



 "제주 풍경과 인물속에 형상화된 인간 존재에의 연민과 우수를

   그린 이 시대의 위대한 작가!!  변시지"








제주출생의 원로작가로서 주로 제주의 바람과 바다와 말을 그린다.

한 마리의 바닷새와 돌담의 까마귀와 쓰러져 가는 초가와

소나무 한 그루와 마침내 이 모든 것을 휘몰아치는 바람의 소용돌이 --




그의 이러한 풍경 속에는 어김없이 구부정한 한 사내가 바람을 마주하고 서 있는데,

이러한 변시지 회화의 기본 구도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와 고독감이 고즈넉하게 녹아 있다.




화면 전체가 장판지색 혹은 건삽한 황토빛으로 처리되어 있고,

풍경과 인물은 먹선의 고졸(古拙)한 맛과 역동성(力動性)이 함께 어울려 장대한 대자연의 율동으로 형상화된다.

제주에서 출생하여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수업

 23세에 일본의 광풍회전(光風會展) 최고상을 수상하여 화제를 모았던 그는

귀국하여 서울대, 서라벌예대, 교수를 역임하다 다시 제주로 돌아간다.

실로 40여년만의 귀향이었다.




변시지의 그림은 얼핏 보기에 제주의 풍물이 詩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갈매기와 바닷새와 쓰러져 가는 초가,

바람 혹은 태양을 마주하고 망연히 서 있는 사내 -




이 소재들은 그러나 인간존재의 근원적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부수적인 소도구일 뿐

제주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풍물시가 아니다.

풍경으로 처리된 변시지의 인물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우수이고 그 표현의 저돌성은 모두 아름답고 개성적이다.




--열화당 미술문고 "변시지"와 "모딜리아니"-- 중에서










제주 풍경 , 41 x 31cm(약7호) , 캔버스에 유채 







나그네 , 31 x 40.5cm(약7호) , 캔버스에 유채 







제주풍경 , 40.3 x 31.3cm(약7호) , 캔버스에 유채 







소년과 말 그리고 바다 , 31 x 40cm(약7호) , 캔버스에 유채






소년과 말 그리고 바다 , 31.5 x 40cm(약7호) , 캔버스에 유채 









변시지의 터치는 거칠고 팍팍한 갈필(渴筆)로써 그 붓에 힘을 주어 마치 단단한 덩어리가

막 찢기는 순간과도 같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두텁게 덧칠하여 텁텁하고 투박해진 마티에르, 바다와 하늘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한 여백,

대상 소재의 묘사를 생략하여 절제된 단순미로 완성시키는 표현 방식은

변시지 화풍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위트는 흥미를 유발하는 기술(技術)이다.

등장인물이 돌하르방, 까마귀, 개, 게, 말 등과 대화하는 모습은 친근한 웃음과 정감을 자극한다.

위트(wit)는 고급스런 유머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거시적인 삶의 풍경을 넘어서서

보다 가깝게 인간의 원초적 교감(交感)을 드러내준다.

위트는 서사 속에서만 자란다.

변시지의 서사적인 풍경이 민속과 풍물을 다루면서도 통속적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위트의 힘 때문이다.



상상력은 인간의 경험에 의해서만 탄생한다.

변시지의 상상력은 바로 풍토적이면서 원시적인 경험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 제주의 자연을 기반으로 한 기억과 그 잠재된 이미지 위에 덧씌워진

1975년 이후, 다시 각인된 생생한 풍토적 가치관은

변시지의 바람과 빛의 미학을 완성한 상상력의 용출수였다.



제주에서 시작하여 제주에서 마감된 "제주 풍토의 美" 가 다시 "세계의 미학"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성과 세계성이 통일된 모습을 보여준 한 화가가 우리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변시지



1926 제주도 출생

1945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학과 졸업.

데라우치 만지로(寺內萬治郞)문하에 들어감

서울대교수,서라벌예대 교수,제주대교수 역임

1975년 제주도 정착



[개인전]

1949 도쿄 긴자(銀座)의 시세이도(資生堂)화랑에서 제1회 개인전

1951 시세이도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

1953 오사카 판큐(阪急)백화점의 화랑에서 제3회 개인전

1958 화신화랑(화신백화점)에서 제4회 유화 회고전

1966 저서 「신 미술」출간

        말레이시아 미술초대전

1968 국제미술교육협회 한국 대표로 도일

1972 일본 후지 화랑 「한국현대미술계 최고 일류 저명작가전」

1978 제7회 개인전(변시지 이화숙 부부전)

        제8회 개인전

1981 제13,14,15회 개인전

        로마의 아스트로라비오 화랑 초대전(제16회 개인전)

        「오리엔탈 미협전」

1982 「현대미술 대상전」심사

        제17회 개인전 / 제18회 개인전 / 제18회 「수묵화 초대전」

1983 제20회 「수묵화 초대전」

1984 제21회 개인전 / 제22회 「수묵화 초대전」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1985 제23회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한일미술교류전」「회화14인전」

1987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신 미술대전」심사위원장

1992 도쿄 「 TIAS국제전」「광풍회전」「이형전」

1993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전

1995 변시지 고희 기념전(제32회 개인전)

1999「근대회화전」「한국미술"99 인간?자연?사물전」

     그림갤러리 특별초대전(제34회 개인전)

2000「움직이는 미술관전」「신맥회전」「광풍회전」

1953-2000 「광풍회전」출품

1993-2000 「신맥회전」출품



[수상]

1947 제33회 「광풍회전(光風會展)」에서 <겨울나무>A,B가 입선.

     일본 문부성 주최의 「일전(日展)」에서 <여인(femme)>이 입선

1948 제34회 「광풍회전」에서 최고상 수상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 서귀포시 서홍동에서 태어났다.

변시지가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6살 때인 1931년.

소년이 제주바다를 건널 때 가슴에 꼬옥 품은 것은 제주였다.

그는 제삿날 지붕에 뿌린 잡식을 먹던 까마귀의 기억과 조랑말을 타던 추억,

한시도 쉬지 않고 얼굴을 때리던 바람을 함께 배에 실었다.



돌담으로 에둘러진 새밭의 무서운 이야기는 마음 깊숙이 숨겨두었다.

등 뒤로 보이는 한라산은 더욱 유연하면서도 웅장한 인상을 남겼고,

푸른빛의 바다는 흰 거품을 내며 소리쳐 우는 듯 했다.

바람이 할퀴고 간 섬의 흔적들은 몸의 상처처럼 아련히 남겨두었다.

정작 서귀포에 두고 가는 것은 제주의 자연이었고,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라곤 못내 아쉬운 섬의 추억뿐이었다.



그가 일본에서 한국에 돌아온 것은 1957년.

가족과 정착한 서울 생활을 두고 홀로 다시 제주에 온 것은 1975년,

제주를 떠난 지 44년 만이다.

그 때 제주 공항에 내린 변시지는  작열하는 태양이 그 어느 곳보다 가깝게 느껴졌고,

순간 온누리가 누런빛으로 빛나고 있음을 보았다.  



기억의 힘은 무섭다.

기억은 원초적 본능처럼 사람을 유인(誘引)하는 힘이 있다.

제주를 떠난 사람이 다시 원을 돌듯 제주에 온 것은 어김없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아니던가.

이 본능은 자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스스로 그렇게(自然) 되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 원시적인 제주 자연과 함께 자랐던 기억이 변시지로 하여금

다시 제주 해협을 건너게 했으니 분명 고향은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다.

제주에서 보낸 날보다 외지(外地)에서 지낸 날이 많았으련만,

고향은 "생(生)의 시작"과 "생의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변시지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었다





*위 변시지작품은 1980년대 중후반에 작가에게 직접 구입한 작품으로 보존상태가 좋으며

  현재 소장자는 부산KBS 방송국에 재직중인 분입니다.

  작가에게 직접 구입한 작품이므로 감정을 받아볼 필요가 없습니다만


  감정필요시 감정 가능하다고 하는 진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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