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년 8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
아카데미 생뤼크를 거쳐 왕립아카데미에서 수학
프랑수아 부셰, 조셉 마리 비엥에게서 사사받음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1774년 로마상을 받고,
1775년 ~ 1780년 로마에 유학
18세기 프랑스 회화의 전통을 고수했으나,
볼로냐, 피렌체 등을 여행하며 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 감명을 받고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에 심취하면서 신 고전주의를 탐구했다.
1783년 재차 이탈리아 여행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명성이 높아졌다.
당시의 대표작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가있다.
프랑스 혁명때는 자코뱅당에 속하여 '마라의 죽음'등으로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표시했다.
1790년대에는 점차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경한 혁명당원이자 공화주의자였던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에게 협력했다.
1794년에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당하자, 다비드 역시 체포되어 잠시 투옥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복잡한 인물 구성이 특징적인 '사비니 여인들(1799,루브르)를 제작했다.
이후 다비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지지했고,
정치 선전물인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렸다.
영웅적이고 감동적인 이 초상화는 고전주의적인 섬세한 선적 묘사를 보여준다.
그 후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고
당시의 화단에 군림하여 '나폴레옹의 대관'등을 제작했다.
레카미에 부인 및 기타 훌륭한 초상화를 남겼으며,
지로데, 트리오종, 그로, 제라르 등의 후배를 길러냈다.
나폴레옹 실각 후 1816년 이후 브뤼셀로 망명했다.
말년에 다비드의 작품은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의 사용이 증가했고,
신화적인 주제와 초상화로 회귀했다.
그 후 1825년 12월 29일 생을 마감했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제작연도 : 1800년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231 x 264cm
소장처 : 빈 미술사 박물관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궁정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0년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79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원로원으로부터 제 1통령으로 임명받은 나폴레옹은
이듬해 이탈리아 원정에 나선다.
나폴레옹은 1797년 프랑스군을 이끌고 롬바르디아 지방을 점령하였으나
1800년경 프랑스군은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오스트리아군에 포위당해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 위기에서 프랑스에서 가장 빨리 제노아로 갈 수 있는 길은
알프스를 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기로 결정했다.
1800년 5월, 알프스를 넘은 나폴레옹은 비록 제노아에서는 패배했지만
그에 이은 6월의 마렝고 전투에서 승리하여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이탈리아를 장악하자 스페인 왕 카를로스 4세는
프랑스 혁명 이후 냉각관계에 있던 양국의 외교관계를 회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시의 외교적 관례대로 프랑스와 스페인 양국은 초상화, 의복, 보석 등 여러 선물을 주고 받았다.
이 그림은 그 일부로 카를로스 4세가 나폴레옹에게 약속한 '다비드가 그린 초상화'이다.
비록 카를로스 4세가 나폴레옹을 위해서 주문한 것이지만 완성된 후 그림은
두나라의 우정의 상징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궁전에 걸리게 되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1808년 카를로스 4세가 아란페스 폭동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대신 나폴레옹의 형인 조세프 보나파르트가 스페인 왕이 될 때까지 궁전에 걸려있었으나
나폴레옹의 실각 후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함께 가지고 갔다.
그 후 그림은 1949년까지 미국에 있다가 후손인 유제니 보나파르트의 기증으로 프랑스에 돌아가게 된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이 그림이 원본이지만
나폴레옹이 다비드에게 같은 그림은 3점 더 제작하도록 하였고
이외에도 다비드가 개인적으로 제작한 1점이 더 있어 전부 5점이 제작되었다.
다비드의 작품에는 보통 수많은 관련 밑그림과 스케치가 남아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이 초상화를 위해 모델을 선 것은
단 세 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그림과 관련된 자료는 많지 않다.
다비드는 결국 나폴레옹의 흉상을 바탕으로
이 그림 속 나폴레옹의 얼굴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음 카를로스 4세가 주문한 것은 제 1통령의 제복을 입고 있는 나폴레옹의 초상이었으며
다비드는 기마상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초상화는 결국 나폴레옹이 원하는대로
'침착하고 용맹하게 말을 타고'알프스를 넘는 모습으로 결정되었다.
말의 발굽 아래, 그림의 오른쪽 하단 바위에 나폴레옹 이전에 알프스를 넘은 두 영웅,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9세기경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샤를마뉴의 이름이 새겨진 것도 나폴레옹의 제안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어두운 날씨 속에서
힘차게 뛰어오르는 말 위에 앉아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고 있다.
나폴레옹의 망토 또한 손가랑과 같은 방향으로 휘날리고 있어
관람자의 시선은 전체적으로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상승하도록 되어있다.
나폴레옹이 실제 알프스를 넘을 때 날씨는 맑았고,
그는 지리를 잘 아는 현지인이 끄는 노새를 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어
이 그림이 기록화가 아닌 정치적 프로파간다 역할을 하기 위해 미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나운 날씨와 험준한 산세는 위험 속에서도
침착하게 병사들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영원한 영웅 나폴레옹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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