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무희들의 화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무희란 내게 아름다운 옷을 그리고 움직임들을 살려내는
한낱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 에드가 드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프랑스의 화가
파리의 근대적인 샐활에서 주제를 찾아 정확한 소묘능력 위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을 표현했다.
인물동작의 순간적인 포즈를 교묘하게 묘사해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을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데생화가 중 한명인 에드가 드가는
고전주의 미술과 근대미술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그는 회화와 드로잉, 그리고 조각뿐만 아니라
189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진술에도 정통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장 외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1855년에 앵그르를 만났는데
그는 드가에세 '선에 충실하라'는 유명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에서 주제를 찾게 되자 더욱 재능을 발휘하여
정확한 소묘능력위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을 표현하였다.
인물동작을 잡아 순간적인 포즈를 교묘하게 묘하사여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을 강조해왔다.
경마나 무희, 욕탕에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여성의 한 순간의 동작을 즐겨 그렸다.
이러한 그의 눈과 기량은 파스텔이나 판화에도 많은 수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만년에 시력이 극도로 떨어진 뒤에 손댄 조각에까지 더없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선천적으로 자의식[自意識]이 강한 성격때문에 독신으로 보냈고,
그의 인간혐오증은 늙어갈수록 더하여 고독한 가운데 파리에서 생애를 마쳤다.
본명 일레드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
1834년 7월 19일 프랑스 파리 출생
1855년 미술학교에 입학해 L.라모트 밑에서 수학
1856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작품에 심취
1865년 살롱에 '오를레앙시의 불행'출품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출품
1876년 '압생트' 완성
1881년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완성
1886년 '대야'완성, 뉴욕에서 작품이 전시 됨
1895년 런던에서 드가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회가 열림
1917년 9월 17일 파리에서 사망
무대 위에서의 연습
제작연도 : 1878 ~ 1879년경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71 x 52.5cm
소장처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유화, 파스텔, 수채화, 목탄화 등 드가는 거의 모든 테크닉에 능했던 화가다.
드가가 이러한 천재적인 테크닉을 이용해
주로 순간적인 동작과 인물들의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크로키 하듯 포착해내곤 했다.
원근법과 화면의 중앙을 비워두는 구도를 통해 화가가 매료되었던 일본 목판화의 영향이 드러난다.
사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던 드가의 감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어떤 인물도 똑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지 않은데
묘사된 인물 각각의 독특한 움직임이 그림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이 시대에 발레리나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예술인이라기 보다는 춤추는 무희정도로, 대부분 가난한 집안들의 소녀들이였으며,
지금처럼 예술가로 대우받지 못했다.
드가의 작품곳곳에 검은양복입은 신사들이 나오는데
그 남성들은 부유한 계층의 신사들로 발레리나 스폰서라 한다.
오페라 하우스의 부유한 고객들은 주로 발레가 아닌 발레리나를 후원하고 있었다.
그 스폰서들은 공연시작 전, 끝난 후 소녀들을 따로 만날 수도,
무대 뒤까지 자유자제로 다닐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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