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에로티시즘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7.14 ~ 1918.2.6
오스트리아의 화가.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결성했다.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고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주요작품]
유디트 Judith (1901)
프리차 리들러의 초상 Portrait of Fritsa Reidler (1906)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1907)
입맞춤 The Kiss (1907~1908)
다나에 Danae (1907~1908)
아담과 이브 Adam and Eve (1917~1918) 등이 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제작연도 : 1907년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138 x 138cm
소장처 : 노이에 갤러리
클림트의 대표적인 작업스타일인 금박을 사용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은 화려하며 웅장하다.
나치 정권 시에는 히틀러의 소장품이기도 했던 작품이다.
히틀러가 그의 작품 몇 점을 강제로 소유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 당시 화가로서의 클림트의 명성과 인지도를 말해준다.
클림트는 살아 생전에 작품을 통해 부유한 삶을 누렸으며 상류층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고 한다.
상류층과의 교류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이 여인 블로흐 바우어였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클림트가 가장 선호했던 모델이자 후원가였으며,
클림트와의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던 엄청난 재벌집의 안주인이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1881년 은행가 모리츠 바우어의 딸로 태어났다.
경제계 엘리트집단의 한 사람이었던 모리츠 바우어는 빈 은행연합의 총감독으로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대표하는 7대 은행을 좌지우지하던 인물이었다.
아델레는 1899년 열일곱살 연상의 기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와 결혼했는데,
불행히도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아델레는 두번을 유산했고, 세번째 아이도 태어난지 며칠 안되어 죽고 말았다.
아이가 없는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나이차이가 있었던 만큼
성적인 관계보다는 서로에 대한 높은 존중과 세심한 배려로 이어졌다고 한다.
페르디난트는 1903년경 아내의 초상화를 빈의 이름난 화가 클림트에게 의뢰했다.
클림트는 이전에는 해보지 않은 새로운 화법을 구사해냈는데 바로 금을 사용하는 것이였다.
블로흐 가문의 부유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에 금박장식을 한것으로 유명하다.
작품에 나타나있는 화려한 보석이 박힌 두꺼운 목걸이나 금팔찌, 드레스 등은
남편 페르디난트가 선물한 것으로 그런 장식구들은 아델레의 초상화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그당시 남편의 재력과 현대적인 취향을 더 과시할 수 있었다.
아델레의 초상화는 클림트 그림의 '황금양식'을 대표하는 주요 작품으로 남아있다.
완성된 작품은 1907년 독일 만하임에서 공개된 후 이듬해 빈에서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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