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든 꽃병 [A Vase or Roses] > 명화 Reproduction - 큐알아트
  • 북마크

빈센트 반 고흐

HOME 명화 Reproduction빈센트 반 고흐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큰 작품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번째 이미지 새창
2번째 이미지 새창
3번째 이미지 새창

장미가 든 꽃병 [A Vase or Roses] 요약정보 및 구매

작품코드 qr2545
작가 빈센트 반 고흐
작품크기 50 x 60cm (15호)
재료 Reproduction on canvas
액자 canvas
현재가 180,000원 (시작가:180,000원)
즉시구매가 300,000원
배송비 유료 20,000원 기본배송비이며 액자유무,작품크기, 지역에 따라 비용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작품 정보

작품 상세설명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다.'
- 카미유 피사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빈센트 반 고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20세기의 미술운동들, 특히 야수주의와 독일 표현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토대를 제공했다.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린 후기인상주의 화가.
초기 화풍은 농부들을 강렬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하였으나
후기에는 임파스토 기법의 표현주의적 화풍을 만들어 냈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품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이 유명하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에서 출생
1869년 사관후보생이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일을 시작
1875년 구필화랑 파리 지점에 취직.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탐독하는 생활을 함
1876년 구필화랑을 관두고 영국에 잠시 머물다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감
1878년 목사가 되려고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포기. 
           브뤼셀에서 3개월간 복음 전도사 교육을 받았으나 임명되지 못함
1883년 작품활동 시작
1885년 '감자 먹는 사람들'완성
1888년 프랑스 아를로 이주해 '노란집'을 예술가 공동체로 만들려 시도
           폴 고갱과 동거.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등 많은 작품 제작
1889년 파리로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
           이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제작
1890년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 사흘 간 앓다가 7월 29일에 사망





장미가 든 꽃병   [A Vase or Roses]

제작년도 : 1890년
사조 : 후기인상주의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73.7 x 92.6cm
소장처 : 아넨버그 컬렉션

 

화가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빈센트 반 고흔는 꾸준히 정물화를 그렸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그린 나막신이나 병, 농사 도구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농부들의 고된 삶에 상응하는것이었다.
그 후 파리에서 머물던 시절에는 거의 30여점이나 되는 꽃 그림을 그렸다.

아를(Arles)에 도착했을 때, 꽃이 만개한 나무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반 고흐는 '괴물처럼 환한'과일나무를 그리는 일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1889년 1월 생 레미(Saint-Remy)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빨리 아름다운 계절이 와서 꽃이 활짝 핀 과일나무를 그릴 수 있기를 바랐다.

1890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생 레미를 떠나기 직전에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어.
특히 장미나 보라색 붓꽃과 같은 꽃다발을 많이 그렸지'라고 적으며,
자신이 얼마나 꽃 그림에 열중해 있는지를 알리기도 했다.
이 작품[장미가 든 꽃병]은 백장미를 묘사한 것으로서,
아를에서 그린 '해바라기'나,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붓꽃'연작들과 더불어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분홍색이나 붉은색의 장미를 많이 그렸던 르누아르와 달리,
반 고흐는 장미 속에서 분홍 색조를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눈을 사로잡았던 수많은 사물들을 그리던 방식으로 꽃을 그렸다.
왜냐하면 이러한 꽃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면에 끊임없는 반항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어떤 모델을 상대로 인물화를 그린다면,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꽃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일이야'라고 적었던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꽃 정물화를 '색채를 다루기 위한 훈련의 일부'로 여겼다.
하지만 그이 꽃 그림들이 '색의 사용을 위한 습작들'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가 아무리 그 사실을 부인했다고 하더라도,
반 고흐가 뛰어난 꽃 그림을 그린 화가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꽃들의 가진 다양한 색채,
피었다가 덧없이 지는 꽃의 모습은 일종의 도발과도 같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의 꽃 그림은 '붓꽃'연작에 이르러,색채의 장점을 보여주었으나,
그 이후에 그린 그림들은 에두아르 마네가 말기에 그린 꽃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품구성은 3가지 타입으로 주문 가능합니다.
물론 작품 크기도 원하시는 사이즈로 주문 가능합니다.



1. 고 해상도의 발색이 원작에 가까운 Reproduction 작품.

2. Reproduction 작품위에 거장의 손길이 들어간 마띠에르가 느껴지도록
  작품에 부분적으로 미술재료로 질감 처리한 작품. (※가격별도문의)

3. Reproduction 작품위에 원작의 숨결을 느낄수 있도록 캔버스 전체에
  유화물감으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원작을 재현시킨 작품. (※가격별도문의)


액자도 명화의 품격에 맞게 앤틱한 고급수지 액자 부터 심플하고 모던한 액자,
명화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수려한 원목 수제 액자까지 가능합니다.
명화의 느낌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도록 모든 작품은 '유리없는 액자'로 제공됩니다.



 

관련작품

오늘 본 작품(1)

  • 장미가 든 꽃병 [
    180,00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