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운것이어야 한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 주어야 한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두 가지 속성은 설명할 수 없어야 한다는것과 모방할 수 없어야 한다는것이다.
예술작품이라면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을 압도해야 하며, 어디론가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술가 자신의 열정 속으로 사람을 휩쓸게 하는 흐름이다.'
- 오휘스트 르누아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프랑스의 화가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했다.
이탈리아 여행 후 담백한 색조로 선과 포름을 명확하게 그려
화면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을 그렸다.
그 후 인상파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풍부한 색채를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했다.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뛰어난 색채가로서
만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작하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최후 10년간은 조수를 써서 조각에도 손대어 '모자(母子,1916)'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1841년 2월 25일 프랑스 리모주에서 출생
1845년 가족과 파리로 이주
1854년 도자기공장에서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함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서 모네, 피사로, 세잔 등과 조우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판자 관람섬'출품
1876년 '몰랭 드 라 갈레트'완성
1879년 '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완성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라파엘로의 그림과 품페이 벽화등에서 깊은 인상을 받음
1887년 '목욕하는 여인들'완성
1888년 '나부'완성
190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음
1919년 12월 3일에 사망
Reproduction 작품위에 원작의 숨결을 느낄수 있도록
캔버스 전체에 유화물감으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원작을 재현시킨 작품입니다.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Montmartre]
제작년도 : 1876년
사조 : 인상주의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131 x 175cm
소장처 : 오르세 미술관
“작가는 시끌벅적하고 가벼운 보헤미안 분위기의 댄스 홀 풍경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이는 1877년에 열린 제1회 인상파 전시회에서
미술 비평가 플로 오스카(Flor O’Squarr)가 르누아르의 최고의 걸작이라 손꼽히는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 풍차 근처 작은 정원에서 열린 무도회에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다.
금발의 홍조를 띤 여인들은 환하게 웃으며 남성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춤을 추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오른쪽 하단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한 무리의 인물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없이 안무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무지개처럼 빛나고, 캔버스 곳곳에는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그의 전기를 쓴 조르주 리베레(Georges Riviere, 1855-1943)에 따르면,
그림은 몽마르뜨 언덕의 댄스 홀에서 ‘직접’ 그려졌다고 한다.
당시 이곳은 상당히 인기가 많아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전해진다.
‘물랭 드 라 갈래트’라는 이름도 당시의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현재는 풍차만 그대로 남아 있으나, 과거 사진을 참고해보면
1900년경까지 밝은 초록색 나무로 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르누아르는 이곳의 장면을 그리기 위해 작업실까지 근처의 코르토 거리에 잡았을 만큼
‘물랭 드 라 갈래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이곳은 르누아르뿐 아니라,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로트렉(Toulouse-Lautrec, 1864-1901),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등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장소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르누아르의 전기에서 리베레는 그림에 등장하는 그들의 친구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르누아르의 또 다른 작품<그네(La Balancoire)>(1876)의 모델인 잔느(Jeanne)와
그녀의 언니 에스텔(Estelle)은 전경의 벤치에 앉아 있다.
이들과 마주하며 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명의 남자,
프랭크 라미(Franc-Lamy, 1855-1919),
노베르 고네트(Nobert Goenuette, 1854-1894)와 리베레는 모두 화가이다.
이들 외에도 화가였던 앙리 제르베(Henry Gervex, 1852-1929), 프레데릭 코르데(Frederic Cordey, 1854-1911)와
공무원 피에르-위젠 레스트렁게르(Pierre-Eugene Lestringuez), 신문기자 로트(Lhote)는 춤을 추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화면의 중앙에는 스페인 화가 돈 페드로(Don pedro de Barberana y Aparregui, 1579-1649)가 여인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그는 쿠바에서 왔으며, 당시 유행하던 베이지색 ‘Merd’Pye’ 바지를 입고 있다.
이들은 빈 공간에서 다른 이들과 달리 관람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진 전경의 인물로
관람객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 할 수 있다.
구성요소 및 표현기법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장면을 그리기 전까지,
르누아르는 보통 단독 혹은 두 명 정도의 인물만을 그려왔다.
간혹 많은 수의 사람들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 작품처럼 오랫동안 고심해서 그린 작품이 아니었다.
당시 화상이었던 볼라르(Ambroise Vollard, 1866-1939)는
르누아르가 작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그린 여러 점의 습작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에 따르면 르누아르는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를 제작하기까지
‘물랭 드 라 갈래트’의 풍경, 춤추는 사람들을 빠르게 그린 스케치,
춤추는 한 쌍의 남녀 등을 그렸다고 전한다.
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여러 명의 움직이는 인물들의 다채로운 동작에도 불구하고,
전경 양편에 있는 인물에서부터 후경의 춤추는 사람들까지 균형감 있게 그려진 것은
그의 오랜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물인 것이다.
야외 정원에 쏟아지는 햇빛은 격자 구조물에 걸려있는 램프들에 반사되어 더욱 복잡해진다.
빛은 인물들의 어두운 옷, 여인의 옷자락 할 것 없이 흩어져있다.
이것은 형태를 흐리게 하고 색의 구분을 사라지게 만들지만,
동시에 떨어지는 아카시아 잎사귀들과 그림자들에 의해 이내 잠잠해진다.
이와 같은 빛과 그림자의 경쾌한 어울림은
모네의 <라 그르누이에르(La Grenouillere)>(1869),
마네의 <튈르리에서의 음악회(Music in the Tuileries)><(1862)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품구성은 3가지 타입으로 주문 가능합니다.
물론 작품 크기도 원하시는 사이즈로 주문 가능합니다.
1. 고 해상도의 발색이 원작에 가까운 Reproduction 작품.
2. Reproduction 작품위에 거장의 손길이 들어간 마띠에르가 느껴지도록
작품에 부분적으로 미술재료로 질감 처리한 작품. (※가격별도문의)
3. Reproduction 작품위에 원작의 숨결을 느낄수 있도록 캔버스 전체에
유화물감으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원작을 재현시킨 작품. (※가격별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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