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다.'
- 카미유 피사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빈센트 반 고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20세기의 미술운동들, 특히 야수주의와 독일 표현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토대를 제공했다.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린 후기인상주의 화가.
초기 화풍은 농부들을 강렬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하였으나
후기에는 임파스토 기법의 표현주의적 화풍을 만들어 냈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품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이 유명하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에서 출생
1869년 사관후보생이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일을 시작
1875년 구필화랑 파리 지점에 취직.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탐독하는 생활을 함
1876년 구필화랑을 관두고 영국에 잠시 머물다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감
1878년 목사가 되려고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포기.
브뤼셀에서 3개월간 복음 전도사 교육을 받았으나 임명되지 못함
1883년 작품활동 시작
1885년 '감자 먹는 사람들'완성
1888년 프랑스 아를로 이주해 '노란집'을 예술가 공동체로 만들려 시도
폴 고갱과 동거.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등 많은 작품 제작
1889년 파리로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
이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제작
1890년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 사흘 간 앓다가 7월 29일에 사망
아를의 반 고흐의 방 [van gogh's bedroom at arles]
제작년도 : 1889년
사조 : 후기인상주의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73 x 91cm
소장처 :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반 고흐는 '반 고흐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세 작품을 그렸다.
가장 오래된 버전은 1888년 10월 중순에 아를에서 그려진 것으로,
반 고흐가 ‘남프랑스 아틀리에’라는 예술가 공동체 구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고갱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기이다.
반 고흐는 10월 17일 고갱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인의 전반적인 회화 구성에 대해 묘사하며
자신은 공간을 기묘하게 변형시켜 모티프에 적용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갱과 반 고흐의 만남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으며,
그로부터 얼마 후 반 고흐는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후 일어난 홍수로 인해 작업실에 방치해 두었던 최초의 '반 고흐의 방' 일부가 손상되었다.
이 최초의 작품은 현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1889년에 생레미 요양원에서 나온 그는 같은 주제로 두 점의 작품을 더 그렸다.
이중 하나는 원본과 동일한 크기로 현재 시카고 미술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어머니와 여동생 윌을 위해 그린 나머지 하나는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친구이자 화가인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신집의 554번째 편지에서
반 고흐는 이 작품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색채의 상징주의를 이용하여 고요함을 표현하고,
방의 간결하고 단순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흐린 남보라색 벽과 금이 가고 생기 없어 보이는 붉은색 바닥,
적색 느낌이 감도는 노랑색 의자와 침대, 매우 밝은 연두색 베개와 침대 시트,
진한 빨강의 침대 커버, 오렌지색 사이드 테이블, 푸른색 대야,
녹색 창문과 같은 다양한 색조를 통해 절대적인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색조를 표현하기 위해 일본풍 채색 비단의 모티프와 판화 기법을 참고했지만,
실상은 본인이 의도했던 일본식 단순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이 작품의 세 가지 버전에서는 문, 창문, 의자, 침대 같은 주요요소가
모두 동일한 위치에 그려졌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가장 쉽게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은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들로서,
특히 캔버스 프레임 바로 아래에 있는 초상화 두 개와 침대 머리맡 위에 걸린 풍경화에 변화를 주었다.
여인의 초상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그 옆에 있는 초상화의 경우 인물의 특징으로 보아 반 고흐 자신의 초상을 그려 넣은 것처럼 보인다.
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의 경우, 인물의 수염과 붉은색 머리카락,
V자 네크라인의 옷으로 미루어 보아 1889년 9월에 생레미에서 그린 자화상인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서는 머리의 위치, 깨끗하게 면도된 얼굴,
차이나 칼라의 상의로 보아 동일 시기에 그려진 또 다른 자화상과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자화상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완성했으면서,작품 속에는 왜 다른 모습으로 그렸는지,
그리고 거의 유사한 두 점의 작품에 왜 이 자화상들을 그려 넣었는지 그 이유는 불가사의다.
또한 1889년 9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주제로 그린 '피에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반 고흐의 자화상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앞선 의문과 일맥상통하며,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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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작품 크기도 원하시는 사이즈로 주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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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부분적으로 미술재료로 질감 처리한 작품. (※가격별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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