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지난 3월에 열린 봄맞이 소품 특별전 ‘3・3・3’ 전시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A: 저는 20, 30대의 젊은팬이 두터운 편입니다.
하지만 젊은팬들의 핸디캡은 지갑이 얇다는 것이죠.
제 그림을 좋아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니 그림을 갖고 싶어도 구입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젊은층을 위해 준비한 특별전이기도 합니다.
3월 3일, 3호의 33개 소품전 이른바 ‘3・3・3’개인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한 이번 전시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도 즐겁지만, 전시 때마다 새로운 콜렉터들이 생기는 것이 기쁩니다.
제 콜렉터들은 오래된 분들이 많지요.
10년 전 그림과 현재의 그림이 변화가 있듯, 팬들도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 함께 가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Q.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서 독특한 작품세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그림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연인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사랑하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그립니다.
사랑은 ‘웅변’이 아니고 ‘속삭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빨강 파랑 원색의 강렬함이 아닙니다. 밝고 화사하면서도 잔잔한 파스텔톤입니다.
마치 오로라의 찬란한 빛과도 같지요. 또 사랑은 칼날같이 매섭거나 각지고 심플한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몽글몽글 꽃이 피어오르는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죠.
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랑’의 답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기에 연인들에게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모범답안을 미리 보여주어 행복한 사랑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Q. 서정적인 감성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계신데요, 작품의 모티브를 얻는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A: 저는 책을 즐겨 읽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집을 좋아합니다.
시인친구가 많아 자연스레 시를 가까이 하게 된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시집은 가볍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좋지요.
또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공상을 많이 했습니다.
꿈도 잘 꾸는 편이라 늘 머리맡에 메모장를 두고 잠을 청하곤 하지요.
꿈속에서 물 위에도 뛰어다니고, 새처럼 하늘도 날아다니곤 합니다.
꿈의 기억들이 작품에 반영되어 초현실주의적 성격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 밖에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일기를 쓰면 생각이 정리되는 장점이 있지요.
예전에는 편지도 많이 쓰곤 했습니다.
Q. 학창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예술적 소질은 언제부터 보이셨습니까?
A: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공부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곧잘 했고, 그림은 미술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상을 받으면서 실력을 인정받았지요.
일찍이 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성장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영남대학교 미술대학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난과 고독이었습니다.
사업 실패로 흘러들어간 대구시의 변두리 483번지, 그 달동네가 지금도 기억 속 사라지지 않는 고향의 모습이죠.
환경에 위축되어 고독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던 저는 현실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달빛에 소원을 빌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오늘은 젊은 날이 모두 녹아 있는 그 동네를 벗어나기 위한 의지가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그 생활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미대 후배입니다.
제가 스카웃 당했지요.(웃음) 아내가 아동미술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살림을 꾸렸고, 저는 그림만 그렸습니다.
하지만 2004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치고자 가족들을 뒤로하고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2년간 그림만 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시장에 회오리바람이 불었어요.
각고의 노력으로 다져온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전시 첫 날 ‘빨간딱지(그림이 팔렸다는 표시)’가 제 그림에 다 붙었으니까요.
광풍이 불던 미술시장은 2년도 채 가지 않고 거품이 가라앉아 정리가 됐지만,
그 덕분에 지금도 물감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아내에게 참 감사합니다.
전업작가로서 그림만 그릴 수 있도록 내조해줬기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내가 원했던 인생을 살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지요.
Q. 화가로서 가장 보람되는 때는 언제입니까?
A: 내 그림을 통해 태교를 했다는 여성의 이야기, 내 그림으로 사랑 고백을 했다는 이야기,
또 전시장에 와서 제 손을 꼭 잡고 “힘들 때 많은 위안을 얻었다.
좋은 그림을 그려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로서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또 그런 순간마다 제 가슴이 뜨겁게 일렁이며 더 행복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큰바위얼굴’ 일화를 잘 아시죠? 행복한 그림을 보고 행복한 상상을 하면, 어느 순간 저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 그림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행복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Q. 최근 온라인상에서 그림이 퍼져나가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저는 마음껏 이미지를 퍼가라고 말합니다.
제 그림을 사랑해주시는 마음 그 자체만으로 감사한 일이죠.
작품 홍보도 되고요. 작가가 저작권 따지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겨집니다.
관객은 어디서 본듯하고, 친근감이 드는 그림에 더 눈길이 가는 법이니까요.
물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실생활에서 제 그림이 좋아 이미지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Q. ‘작가 이수동’의 작품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A: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사랑을 하다가 막히면, 제 그림을 통해 답을 찾길 바랍니다.
제 그림을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늘 여인들이 존중받고 사랑받는 행복한 모습이지요.
또 그 여인 곁에는 행복한 얼굴의 남자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이야말로 행복한 그림이죠.
그래서 제 그림 속 연인들은 모두가 행복합니다.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그리워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란 기대가 있기에 행복하고,
긴 눈밭을 헤쳐 나가야 하지만 그 길 끝에 서 있는 그녀가 꽃을 받고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사랑이란 설렘이자, 기다림이니까요. 또 조건 없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계산적인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지금 사랑에 가슴앓이 하는 남자가 있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꽃다발을 사들고 그 여인에게 달려가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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