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는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 - 폴 세잔[Paul Cezanne]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사람으로
그의 작품 '인상,일출'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겨났다.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으며,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탐색했다.
말년의 '수련'연작은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모네의 눈에는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빛의 변화가 느껴졌다.
그는 태양이 뜨고 질 때까지 캔버스를 바꿔가며 하나의 대상을 그렸다.
하루 종일 빛을 직접 보면서 작업하느라 시력은 크게 손상되었다.
말년에는 백내장으로 거의 시력을 잃게 되었지만 그림 그리기를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1840년 11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
1862년 샤를 글레르 밑에서 르누아르, 시슬레, 바지유 등과 교류하며 수학.
1867년 '정원의 여인들'제작
1870년 동료이자 연인인 카미유 동시외와 결혼.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이주
1874년 무명예술가협회 그룹전을 열고 '인생,일출'을 출품.
훗날 그 그룹전이 작품의 이름을 딴 '인상파전'이 되었으며 일련의 화가들을 '인상파'로 부르게 됨
1877년 '생라자르 기차역'완성
1891년 '해질녁의 건초더미'완성
1894년 '루앙 대성당,서쪽 파사드, 햇빛'완성
1906년 1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추모하며 '수련'연작 완성
1926년 12월 5일 지베르니에서 사망
튤립과 풍차 - 모네
네덜란드의 튤립 꽃밭[Champs de tulipes en Hollande]
제작년도 : 1886년
사조 : 인상주의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65.5 x 81.5cm
소장처 : 오르세 미술관
보불전쟁을 피해 1870-1871년까지 가족과 런던에 피신해 있던 모네는
프랑스의 풍경화가 샤를 도비니의 권유로 네덜란드를 방문한다.
1871년 6월부터 10월까지 머물면서 그는 25점을 그렸다.
암스테르담을 거쳐 파리로 돌아온 후에는 이 그림을 그렸던
1886년 4월 말에 10일 정도 네덜란드를 다시 찾게 되었다.
이때는 헤이그 주재 프랑스대사관의 안내로 모네는 북부 지역을 방문하고 튤립 밭을 보았다.
당시 그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러한 점이 이 가엾은 화가를 미치도록 만들고 있다네.
이곳을 화폭에 담기에는 표현할 수 있는 색채들이 턱없이 부족하네.'
모네는 화가의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며,
여느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에서 받은 이 감흥을 놓쳐버릴 그가 아니었기에, 그는 이를 5점의 캔버스에 담았다.
붉은 색을 주조로 한 이 작품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고
튤립 밭이 시선을 끌 수 있도록 하늘을 배치함으로써
네덜란드 풍경이 지닌 광활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빨간 색과 노란색, 분홍색과 베이지 색으로 한껏 원색을 뽐내는
튤립 꽃들은 초록 잎과 어우러져 보색대비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한없이 푸르고도 광활한 하늘은
대기의 소리 없는 움직임을 통해 흘러가는 구름을 품고 있으며
그 사이로 비추는 빛은 네덜란드의 한 전원마을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밭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1886년경이면 모네는 이미 아르장퇴유(Argenteuil)시기(1872~1878)에서
선보인 특유의 인상주의적 시각이 한층 성숙되어 있을 시기였다.
참신한 시각, 강렬한 빛, 거친 붓질로 마무리를 거칠게 표현하고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 이 그림에서 더욱 꽃을 피웠다.
이 그림은 마치 바람의 움직임을 스냅 사진으로 포착한 듯
풍경 속에서 색채의 리듬을 잡아낸 것처럼 보이며
드넓은 꽃밭의 넓이감과 그 깊이감 속으로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빠지도록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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