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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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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르의 별이 빛나는 밤에.... 요약정보 및 구매

작품코드 qr5233
작가 빈센트 반 고흐
작품크기 90 x 71cm (30호)
재료 Reproduction on canvas
액자 canvas
현재가 280,000원 (시작가:280,000원)
즉시구매가 600,000원
배송비 유료 30,000원 기본배송비이며 액자유무,작품크기, 지역에 따라 비용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작품 정보

작품 상세설명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다.'
- 카미유 피사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빈센트 반 고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20세기의 미술운동들, 특히 야수주의와 독일 표현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토대를 제공했다.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린 후기인상주의 화가.
초기 화풍은 농부들을 강렬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하였으나
후기에는 임파스토 기법의 표현주의적 화풍을 만들어 냈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품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이 유명하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에서 출생
1869년 사관후보생이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일을 시작
1875년 구필화랑 파리 지점에 취직.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탐독하는 생활을 함
1876년 구필화랑을 관두고 영국에 잠시 머물다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감
1878년 목사가 되려고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포기. 
           브뤼셀에서 3개월간 복음 전도사 교육을 받았으나 임명되지 못함
1883년 작품활동 시작
1885년 '감자 먹는 사람들'완성
1888년 프랑스 아를로 이주해 '노란집'을 예술가 공동체로 만들려 시도
           폴 고갱과 동거.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등 많은 작품 제작
1889년 파리로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
           이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제작
1890년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 사흘 간 앓다가 7월 29일에 사망


아를르의 별이 빛나는 밤에....   30호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제작년도 : 19세기경
사조 : 후기인상주의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92 x 72.5cm
소장처 : 오르세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가 주고 받았던 서신들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밤의 효과’에 매료되어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프랑스 남부 지방의 아름다운 밤 풍경과 별이 무수히 빛나는 하늘을 무척 좋아했다.
1888년 9월, 아를에서 작성한 편지 속에서 그는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 밤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하여
반 고흐는 일종의 예술적인 도전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는 론 강가에서 밤의 빛, 그리고 빛이 투영된 물그림자를 통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구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하늘과 땅, 물과 같은 요소들에 자신의 미적 확신을 부여했다.

이 작품 속에서 밤하늘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코발트 블루로 채색된 하늘은 다소 즉흥적인 방식으로 넓은 붓에 의해 강렬하게 칠해졌다.
수평 방향으로 넓게 칠해진 붓 터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약간 위쪽으로 향해 있는데, 이를 통해 반 고흐의 작업 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북두칠성을 포함하고 있는 큰곰자리 모티프는 밤하늘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데,
방사형으로 칠한 별의 가운데 부분에 흰색 물감을 튜브에서
직접 짜내어 바름으로써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었다.

이렇게 운집되어 있는 밤하늘의 별무리들 중에서
몇 개는 마치 꽃과 같은 모양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밑그림은 지금 보는 모습과는 달랐다.
전경에 위치한 강의 둑은 거의 수평에 가까웠는데,
프랑스 미술관 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반 고흐는 다양한 단계를 거쳐 풍경을 구상하고 변형시키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특히 이 작품의 X선 촬영 사진을 보면,
이 최종 작품의 표면에 그려진 모티프들이 최초 상태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작품을 수정하기 위해 일정 질감의 두께로 물감을 칠한 붓 터치의 변화된 방향도 확인할 수 있다.
왼쪽에 그려진 두 척의 배는 작업 첫 번째 단계의 마지막에 그려졌는데,
이 사실은 돛대를 이루고 있는 수직의 긴 선이 아래쪽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그려졌다는 흔적을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물에 비친 빛을 표현한 가로 방향의 붓 터치들을 흩어 놓는 살짝 긁힌 흔적들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 효과는 반 고흐가 가지고 있었던 값비싼 도구였을 붓의 자루,
혹은 갈대에 의해 구현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연인처럼 보이는 채색된 두 인물의 실루엣은 마치 부조처럼 표현되었다.
X선 촬영 사진을 통해 이를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인물들은 가는 붓을 이용하여 촘촘하고 수직적인 떨리는 붓 터치로 칠해졌다.
그 아래 감춰져 있는 다른 모티프가 없다는 사실을 통해,
반 고흐가 처음부터 이 인물들을 작품 속에 그려 넣기로 계획했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위에 비스듬하게 빛을 비추어 보면,
이 인물들은 가벼운 물감의 층을 형성하여 부조처럼 도드라져 있다.
그의 밤 풍경 속에서, 여인이 들고 있는 가스등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받고 있는
여인의 치마 부분만이 붉은색의 가벼운 터치로 생생하게 채색되었는데,
이 붉은색은 전체적으로 제한된 색들 속에서 배경 전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반 고흐는 1888년 9월에 그렸던 작품의 원래의 배치를 변형하게 되었다.
첫 번째 완성 버전에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론 강 연안의 모습이 보다 곧게 그려져 있었다.
단단하고 두꺼운 물감의 질감 밑에 가려져 있는 흔적은
물결의 아랫부분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첫 번째로 칠했던 물감이 완전히 마른 후에 반 고흐가 수정을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첫 번째 완성 버전을 그렸던 시기와 이후 수정을 하여 최종 버전이 완성된 시기 사이에는
어느 정도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지금 전시된 최종 완성 버전은 몇 달 후인 1889년 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5월 초에 반 고흐는 이 작품을 '앙데팡당전'에 출품해 줄 동생 테오에게 보내면서,
편지 속에 '최근에 이 작품을 수정했다.'라는 내용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애초에 반 고흐가 잡았던 이 작품의 초점은
화폭의 강둑의 입구 쪽으로 둑과 지평선이 한 점으로 모이는 지점이었다.
이 최종 완성 작품 속에서는 그가 원했던 것처럼 구성의 균형을 유지하고
주의를 빛과 하늘 쪽으로 이동시켜 초점이 재조정되었다.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을 결합하고자 했던 그는
강가가 이루는 곡선 위로 노란색 붓 터치를 이용하여 일정 간격으로 작은 불빛들을 찍어 표현함으로써,
아를이라는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빛나는 요소를 작품 속에 투영했다.
비평가 루이 반 틸보르그의 정확한 표현을 빌자면,
반 고흐는 하늘에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조하기 위하여 전경의 땅을 축소시킴으로써
이 작품 속에서 '무한의 공간(하늘)에 대한 은유'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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