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은 우리나라에서는 워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였다.
그러나 몇 년 전, 그의 [행복한 눈물]이 대기업의 비자금 사건과 연루되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이후, 이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작품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그 가격이 충격적이었다.
오래된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아가씨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수십억 대를 호가한다니,
작가로서는 진정 ‘행복한 눈물’을 흘려 마땅하겠지만,
평범한 이들은 과연 이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팝아트’는 글자 그대로 대중문화(popular culture)와
미술(fine art)이 결합하여 탄생한 새로운 미술의 흐름으로,
1960년대 미국문화의 산물이다.
텔레비전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생산과 대량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본격적인 소비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상품들은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격렬한 경쟁을 시작했다.
눈을 현혹하는 포장과 로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상품 광고가 티비와 신문, 잡지, 거대한 광고판과 할리우드 영화를 뒤덮었다.
물건을 구입하고 재빨리 소모하는 방식은 문화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대중문화는 표피적인 오락을 지속적으로 제공했고,
소비자들은 일순간의 만족 이후에는 또 다시 새로운 자극을 원했다.
이처럼 생산 – 소비 – 폐기로 이어지는 짧은 순환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문화는 현재 우리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전달의 매체에 컴퓨터와 인터넷, 이동통신 등이 더해졌을 뿐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무언가를 구입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매체들은 커피일 수도 있고, 증시전망이거나,
올 여름의 히트곡일 수도 있는다양한 유무형의 상품들을 끊임없이 광고하며 소비를 종용한다.
자본주의사회의 우리 모두는 사실 ‘국민’이거나 ‘사회인’이기 보다는 ‘소비자’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의 팝아트는 이처럼 ‘소비자’의 삶 속에
파고든 일상의 모든 것들을 소재로 차용했다.
상품과 광고, 텔레비전과 영화, 만화책과 연예인 등,
‘대중 문화’의 영역에 속해있던 모든 것들은 ‘미술’로 변모하여
엄숙하기 그지없었던 미술관에 당당하게 입성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팝아트는 소위 고급 문화와 평범한 일상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고자 했던
지난 세기의 전위적인 미술가들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미술이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몰두했다면
팝아트는 이를 그대로 포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면, 즐기기라도 하자는 것이 팝아트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당대 대중문화의 총아, 만화책을 베껴 그렸다.
그는 인기 있는 만화책의 한 장면을 골라 세부를 수정하여
큰 캔버스에 유화로 옮기면서, 만화책의 전형적인 포맷은 그대로 유지했다.
단순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검은 윤곽선과 몇 가지의 원색으로 채워졌고
정사각형 틀 안에 말풍선과 함께 등장한다.
색면은 균일하게 칠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작은 점으로 채웠다.
요즘에도 값싼 신문이나 잡지책의 원색 도판을 잘 들여다보면
색점이 망처럼 빽빽하게 찍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이처럼 색을 점으로 분할하여 찍어내는
인쇄기법 벤데이닷(Ben-Day dot: 인쇄기술자였던 벤자민 데이의 이름에서 따왔다)을 모방하여 하나하나 손으로 점을 그렸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점의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물감이 살짝 번져 있는 등 대단히 인간적인 손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카메라나 판화와 같은 기계적인 기법은 미술가의 손을 모방하기에 급급했다.
영화나 만화 역시 미술가의 독창적인 표현과 미적 감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왔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를 모방하여 미술작품을 제작하면서,
기계적인 인쇄기법을 손으로 따라 그렸으니,
대중문화와 고급미술 사이에 엄연히 존재했던 위계질서를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그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로맨스이거나 전쟁이거나.
만화책이 결국은 소녀들이 보는 순정만화와 소년들이 보는 전쟁만화 둘 뿐이니 당연한 일이다.
만화책이란 오늘날의 연속극이나 마찬가지로,
로맨스든 전쟁물이든 대개 뻔한 줄거리여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처럼 앞 뒤 다 자르고 중간의 한 장면만 보더라도,
대략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법이다.
파란 많은 연인을 말없이 믿어주던 착한 아가씨가
결국에는 감동적인 프로포즈라도 받은 듯한 [행복한 눈물]이 그렇고,
마음이 떠난 것이 뻔한 연인이 데이트 약속을 까맣게 잊었더라도
애써 급한 일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음 어쩌면]이 그렇다.
[꽝!]은 용맹한 주인공이 결국은 적군을 물리치는 절정의 순간,
모든 소년들이 손에 땀을 쥐고 열광하는 감동의 장면일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물론 처음부터 대중들의 호응을 받고, 고가에 거래된 것은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나선 것은
1962년, 뉴욕의 유수한 화랑이었던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서 열린 [신사실주의전]에서였다.
이전까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과 윌렘 드쿠닝(Willem DeKooning) 등
뉴욕의 미술계를 지배했던 추상표현주의를 후원하던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의 변신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잭슨 폴락은 물감이 뚝뚝 흐르는 붓을 쥐고, 넓은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듯 온 몸을 움직여 대작을 만들어냈다.
그의 육체적인 궤적으로 뒤덮인 작품은 그 만이 갖고 있던 내면적인 갈등과 폭발적인 에너지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추상표현주의를 상징하는 강렬한 붓자국마저도
인쇄된 만화의 한 장면처럼 장난스럽게 변형시켰다.
그의 작품에서는 더 이상 고립된 스튜디오에 홀로 앉아
붓을 쥐고 고뇌하는 미술가의 전설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전 지식과 고상한 취미, 높은 학식을 갖춘 ‘교양인’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엇을 그린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미술품의 등장은
새로운 계층의 미술 애호가를 만들어냈다.
팝아트의 상업적인 성공은 소비사회의 미덕,
즉 마케팅과 프로모션, 전략적 세일즈의 파워를 보여준 새로운 세대의 딜러와 컬렉터들의 공이 컸다.
시드니 재니스와 레오 카스텔리(Leo Catelli) 등은 미술가를 발굴하여 ‘물건’으로 키워내는 데 천재적이었고,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의 전통적인 부호들이 아니라,
택시회사로 부를 일구었던 로버트 스컬(Robert Scull) 등의 신흥 부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팝아트를 적극 후원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여전히 당대의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무심했던 팝아트를 비난했지만,
대형 미술관과 갤러리, 수집가와 딜러들의 옹호 아래 팝아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리히텐슈타인이 보여주는 로맨스와 전쟁담은 식상하고 진부하며 통속적이다.
그러나 말끔한 원색으로 그려진 그의 커다란 캔버스는 ‘쿨’하고 ‘핫’하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단순하게 즐길 수가 없다.
사실 로맨스와 전쟁은 결코 진부하거나 통속적일 수 없고,
절대로 ‘쿨’하거나 ‘핫’하지 않다. 남녀관계는 대단히 근본적인 인간사의 갈등이며,
사랑과 욕망은 본질적인 감정이고, 전쟁은 극도의 폭력이자 최악의 공포 상황이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결별은 몇 번을 겪어도 아프고 구차하며 끈적거린다.
전쟁터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대단히 고통스럽게 죽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라도 절대로 식상할 수 없고,
폭력은 영화에서처럼 영광적이거나 감동적이 않으며, 더욱이 ‘쿨’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리히텐슈타인의 [펑!]은 천문학적인 가격의 미술품이자,
눈길을 끄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어, 눈부신 조명 아래 세련되게 단장된 미술관 벽에 걸려있다.
그 앞에서는 누구도 진지하게 전쟁을 논하지 않는다.
전쟁이 바로 이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팝아트는 진보적인 미술이 표방했던 사회비판적 기능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스스로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역사적 비극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소비한 후 ‘오-쏘-쿨’하게 폐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