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 돌아온 탕자 ]
인간의 사랑과 용서와 포용이 잘 드러나는 장면을 표현한
렘브란트의 대표작품을 리프러덕션한 작품입니다.스페인과 독립 전쟁에서 승리해 개신교 공화국이 된
네덜란드는 17세기의 전무후무한 황금시대이자, '렘브란트의 세기'였다.
네덜란드 자체가 '렘브란트의 나라'로 불릴 정도이니,
렘브란트라는 이름은 한 시대와 나라를 상징하는 크기를 갖고 있다.
그는 역사화,초상화,풍경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고
유화,판화,드로잉 등 회화의 모든 매체를 사용해
'렘브란트의 빛'으로 조명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렘브란트
네덜란드의 화가,동판화가
근대 유화의 완성자.
1606년 출생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1620년 레이덴 대학에서 배웠으며,
1621년 그의 화가 스와넨부르흐를 사사
이어서 암스테르담에 나가 라스트만에게 배웠다.
1624년 출생지에 귀환하여 작품을 냈는데, 이때의 작풍에는 카라바쵸의 영향이 보여진다.
1631년 암스테르담에 이주한 후, 외과의 조합의 주문으로
'툴프 박사의 해부(1632)'제작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1634년 부유한 오일레부르흐와 결혼, 이후 약 10년동안은 행복했다.
1642년 청신한 화풍을 세인에게 자랑하려는 의도에서
대작 '야경'을 제작했으나,
일반인은 그 예술의 깊이와 가치를 몰이해하고,
동년 사랑하는 아내까지 사별하게 되어 실망과 곤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불굴, 하루도 쉬지않고 작품에 정열을 기울이면서 정진하고
더욱이 하녀 스톱펠스와 재혼 이후 그의 헌신적인 조력을 많이 받았다.
1656년 파산 선고로 유대인 지구에 전거한 후에도 작품 생활에 있어서는
여전히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고 명성을 유지했다.
1664년에는 후처와도 사별하고,
만년에는 세인과의 접촉없이 가난 중에 살다가 사망했다.
네덜란드 최대의 화가로서 특히 종교화에 있어서는 많은 걸작을 냈는데,
루벤스가 가톨릭적 화가로 알려짐에 대해 그는 프로테스탄트적 화가로 알려진다.
그가 남긴 작품 총수는 유화, 수채화, 동판화, 데생등을 포함하여 2천여 작품이 되고,
성서,신화,역사,풍경,풍속,위인 등 각 방면에서 광범하게 취재하여 썼다.
그의 작풍은 그 대상에 대하여는 사실적 수법을 쓴 다른 네덜란드파의 화가와 다름없으나
빛의 효과에 있어서는 색채 및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의도하는 회화적 효과를 올렸다.
이런 점에서 그가 '근대적 명암의 조'란 이름을 듣게 됨도 뜻없는 일은 아니다.
돌아온 탕자
종류 : 캔버스에 유화
크기 : 264.2 x 205.1cm
제작년도 : 1668 ~ 1669년
소장처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
작품의 주제는 신약성서 '루가의 복음서' 15장의 이야기다.
한 아들이 아버지한테서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먼 객지로 떠나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다 없앤다.
할 수 없이 남의 집 더부살이로 연명을 하지만,
누구도 그를 동정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아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 아버지한테로 돌아가기로 한다.
멀리서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을 포옹한다.
그리고 하인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러나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오던 큰 아들은 이것이 못마땅하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좋은 말로 달랜다.
렘브란트는 이 이야기의 줄거리 가운데 인간의 사랑과 용서와 포용이 잘 드러나는 장면을택했다.
아버지는 자식으로 인한 지난날의 고통과 슬픔의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다정한 손길로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아들의 모습은 왜소하고 초라하다.
값진 옷과 화려한 모자를 쓴 채 서 있는 형은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와 잃어버렸던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밝은 빛으로 강조된 아버지의 인자한 얼굴 모습과 흰 수염, 그리고 핏기없는 손길은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쥐어뜯긴 것같이 보이는 엉성한 머리에 누더기 옷을 걸친 아들은 죄많은 인간의 모습이다.
뒤에 어둡게 묘사된 사람들은 시기와 무정과 죄악을 상징한다.
인간 내면의 사악한 마음과 그에 따른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로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 렘브란트는 역사상 위대한 종교화가이다.
작품구성은 3가지 타입으로 주문 가능합니다.
물론 작품 크기도 원하시는 사이즈로 주문 가능합니다.
1. 고 해상도의 발색이 원작에 가까운 Reproduction 작품.
2. Reproduction 작품위에 거장의 손길이 들어간 마띠에르가 느껴지도록
작품에 부분적으로 미술재료로 질감 처리한 작품. (※가격별도문의)
3. Reproduction 작품위에 원작의 숨결을 느낄수 있도록 캔버스 전체에
유화물감으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원작을 재현시킨 작품. (※가격별도문의)
액자도 명화의 품격에 맞게 앤틱한 고급수지 액자 부터 심플하고 모던한 액자,
명화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수려한 원목 수제 액자까지 가능합니다.
명화의 느낌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도록 모든 작품은 '유리없는 액자'로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