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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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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요약정보 및 구매

작품코드 qr6578
작가 박대조
작품크기 90 x 50cm (변형30호)
재료 비단에 채색+배면조명+색상변환장치
액자 아크릴 디아섹 프리미엄 액자 (메탈 프레임과 알루미늄+아크릴액자)
현재가 900,000원 (시작가:900,000원)
즉시구매가 3,0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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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작품 상세설명

작품을 통해 던져진 인간 내면의 시선 찾다

메타포적인 알레고리로 폭력의 현실을 원 상태로 되돌려 놓는 휴머니스트

  •  

cnbnews 제370호 김종근 미술평론가⁄ 2014.03.17 14:02:34

 

▲박대조 작가


박대조(44)의 작품을 보면서 번개처럼 스쳐간 하나의 흥미로운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독일문학의 절정에 선 노벨상의 수상작가인 퀸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이었다. (중략)

퀸터 그라스는 여기서 오스카가 삶을 설명해 주는 해설자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깊은 관찰자로 치밀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이 양철북이 주는 메시지와 시선은 영상에서도 극적으로 전개 되는데, 그 장면 장면들은 바로 3살짜리 꼬마의 시점에서 본 어른들의 세계를 가차 없이 드러낸다.

박대조의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과시적이지 않지만 대단히 묵시적이고 침묵적이다. 마치 내레이터가 다큐멘터리를 감정 없이 서술하고 풀어내듯 감정을 감추고 있지만 내면에는 깊숙한 발언과 송곳 같은 아픈 시선이 담겨 있다.

중요한 것은 박대조의 시각은 무엇이며, 그것은 또 무엇을 의미 하는 가라는 점이다. 그의 시각은 모두 어른들이 만든 문명의 그릇된 욕망과 이기적인 욕심 등의 비판에 집중되고 있다. 이 비판적인 작가의 앵글은 철저하게 선한 표정의 서양 어린이나 혼혈 어린이들의 눈을 빌려 작가의 시선으로 변환 된다.

▲Human&Nature, Mixmedia+Light box, 101x154cm


그것은 사실 작가가 걸쳐 놓은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즉 그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고되고 거친 삶을 살아가는 욕심 많은 현대인들의 리얼리티한 풍경들이다. 이러한 그의 시선을 확대하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 실존의 본질적인 물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기에 그의 인간의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상황들을 향한 박대조의 화살은 나름의 커다란 임팩트가 있다. 그 임팩트란 갈등과 인간의 욕망에 의해 상처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가장 순수한 어린이의 눈을 빌려 말을 거는 방법이다.


▲나는 누구인가?          비단에 채색+배면조명+색상변환장치


철모르는 아이의 눈동자 속에 폭발하는 핵구름 참사 현장의 풍경이 그것이다. 9.11테러의 이미지는 그러한 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눈동자를 통해 들려주는 작가의 메시지 속에는 사실 미술이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드러내는 탐미적인 표현 형식만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작가의 예술적인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 인간의 삶은 자기를 둘러싼 주변 조건들과 자기 내부의 깊은 곳으로부터 발생하는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을 추구하는 힘든 노정이라고 …. 내게 있어 작품 활동은 자기 내부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자연과의 지속적인 반응과 소통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철학” 이라고 말이다.

▲염원14, C-print, 40x48cm, 2010


자연과학 전공, 서법 익히며 동양성 체득

그가 회복하고자 하는 진정한 삶의 철학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비치는 것처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지한 폭력성을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그래서 박대조의 목소리는 메타포적인 알레고리로 폭력성의 현실을 원 상태로 되돌려 놓고자 하는 휴머니스트의 음성이다.

박대조가 스스로 ‘난 자연의 일부다. 나를 넘어선 자연의 무한성도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자연의 본성과 흐름을 따를 때 나와 주변, 세상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존과의 내밀한 공감을 통해 그림자와 더불어 길을 갈 때 나의 길과 자연의 길은 같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인간은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역설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이러한 휴머니티한 인간의 시각을 자연 혹은 돌에 새겨놓고자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는 조용히 침묵하는 비인간적인 현실의 이미지들을 앵글의 세계로 끌고 들어와 인간들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그의 순수함이며 동심의 철학이다.

그의 동심의 열정이 결코 갑자기 출현된 것은 아니다. 일찍부터 그는 동심을 테마로 대리석 판 위에 아크릴릭과 먹으로 수묵산수를 실험 해왔고 보여준 바 있다.

▲염원1, Transparency+입체렌즈+light box+change colo, 110x110cm, 2010


이후에도 비록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오래전부터 서법을 익히며 대학원에서 한국화와 동양철학을 연구하면서 그는 동양성을 체득했다. 그의 동양철학을 향한 학문적 의지는 사실 내면의 예술적 의지를 담아내는 철학적 시각을 갖기 위한 하나의 순수한 열정이자 방법론이었다.(중략)

박대조가 오늘의 현실을 어린이의 눈동자를 통해 읽어내려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장자의 무위자연의 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작가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동양적이면서 장자의 무위자연으로 불리는 박대조의 내면 철학은 작가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인간의 삶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삶의 리얼리티”이다.

최근 다양한 칼라의 조명으로 전환되는 작품이나 인형 시리즈 등은 박대조 작품이 주는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는 삶의 리얼리티의 아주 유효한 형식으로 평가된다. 흑백사진으로 클로즈업 시키던 고정된 얼굴의 눈동자에 인형이나 보다 다른 감성의 불안과 비극을 출현 시키는 것일까? 왜 그는 천진스러운 아이들의 눈동자에 이처럼 잔인한 인간들의 헛된 욕망, 전쟁과 테러의 표정들을 담아내는 것인가?

아마도 작가는 어린이들 눈에 이처럼 선명하게 보이는데, 왜 인간들아 그것을 보지 못하느냐 라는 역설적인 항변이기도 하고 , 이 어린 아이들이 커서 이와 같은 현실들을 물려받는 것에 대한 묵시적인 질타도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순수하게 빛나야 할 아이들의 얼굴, 모든 세상을 담아내는 그들의 얼굴에 내려진 슬픔의 그림자를 박대조는 우리들에게 문신처럼 다시 각인 시켜 줄 뿐이다. 모든 삶을 반영하고 담아내는 눈동자의 본질과 그 슬픔의 실체를 그는 어린이의 눈을 통해 가차 없이 드러낸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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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NB저널 김종근 미술평론가 






 [ 나는 누구인가, 비단에 채색+배면조명+색상변환장치,]


인터뷰- 박대조 작가
상명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박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한국화 석사
 

아이들의 눈망울 통해 ‘인간성 회복’ 투영


   
 
회화와 사진과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자유로운 형식의 화면. 그 속에 투영된 전쟁과 테러와 환경 파괴라는 세기말적인 현대인의 자화상. 우리는 박대조를 마주하는 순간 미래에 대해, 인간의 실존에 대해 겸손한 자세로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대조는 화면을 가득 채운 어린아이의 순수한 얼굴, 아이의 맑은 눈망울 속에 인간이 저지른 추악한 종말론적 상황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이미 때는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인간 스스로 치유의 길로 들어설 기회를 주고 있다. 그는 보여주기만 할 뿐 꾸짖거나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박대조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절박함 속에서도 결코 인간을 포기하거나 저버리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려주는 인내를 발휘한다. 이제야 문득 되묻고 깨닫는 인간.

   
 
박대조는 최근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전시회를 마쳤다.
커다란 화면 뒤에 장착한 LED 조명의 색이 서서히 바뀔 때마다 아이의 얼굴이 주는 느낌이 변한다. 보는 이의 마음을 당겼다 밀쳤다,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게도 했다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슬프게도 만들면서 21세기가 빚어내고 있는 부조리한 세상을 호소했다.
호소가 강렬할 수 있던 것은 그가 캔버스 삼아 메시지를 담아낸 아이의 눈망울 때문인지 모른다.

박대조가 포착한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는 어이없게도 핵폭탄의 먼지구름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담겨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천진스럽게 웃는 아이 얼굴에서는 공포와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이 장면을 들여다보는 우리들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공포와 절망감에 떨게 된다.

화면속의 어떤 아이는 따져 묻는 것 같은 눈망울로 어른들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소통의 단절, 일방적 횡포를 고발하는 듯도 보인다.

박대조에게 순수한 아이의 눈동자는 캔버스다. 어른들에게 더 이상의 파괴를 일삼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다.

   
 
마치 3, 4년 인생을 산 아이에게 30년도 더 산 엄마가 이것도 모르냐며 호되게 꾸짖을 때처럼,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동공은 어른들이 저지르고 있는 인류의 해악을 무방비상태로 맞닥뜨리고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과 마음을 낮출 때 아이의 눈에는 구도자의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지게 된다. 박대조가 아이의 눈동자에 그려 넣은 예수의 상이나 두 손 모은 평화의 기도는 인간이 가야할 방향이다.

“왜 아이의 얼굴인가하면 저는 시험관 아기로 자식을 낳았습니다. 아이에 대해 간절했던 제 경험의 반영이죠.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 앞에서 미안하지 않는가 하는 자책. ‘장자 철학을 통한 망아 세계의 표현 연구’라는 석사 논문을 썼는데, 무위자연의 아이콘, 순수하고 욕심 없는 아이가 보는 어른들의 인위적이고 파괴적인 이항대립적인 간극을 통해 인간의 나갈 바, 가치관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눈동자 속에는 정신과 영혼과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눈동자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아이콘입니다.”

   
 
그의 화면은 철학이다. 인간이 죄책감 없이 자행하는 수많은 파괴적 행위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처방일 수 있다. 아이의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강렬히 빛나는 순간, 마치 핵폭탄이 터지는 듯 인간의 파괴행위가 극대화 되면서 인류와 자연의 공멸을 향해 치닫는 몰인간성의 절정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충격을 통해 인간 스스로 치유의 힘을 얻어 건강성을 회복하기를 기원하는 박대조의 실존적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예술적’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내용, 즉 철학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내용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표현방식, 예술 행위 자체가 서사이고 철학이다.

그가 비단 바탕에 세필로 동양화식 표현을 하고, 거기에 서서히 색을 바꾸는 조명을 끌어들여 시간적 개념을 입히는 행위나, 대리석 바탕에 사진으로 찍어온 얼굴을 확대해 음각으로 새긴 후 묵과 아크릴로 채색하는 상감기법의 자유로운 탈 장르적이고 총체적인 행위는 같은 사물을 다원적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철학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한편의 서사시를 읽는 듯 박대조의 경험과 의도가 녹아 있는 작품을 통해 감상자들은 사색의 폭을 무한대로 넓혀나가게 된다.

전시회를 마친 그는 이제 몇 개월 동안 쉴 생각이다. 그는 보통 수개월 몰입과 쉬기를 반복하면서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에게 쉬는 시간은 작품 활동을 하는 시간일 뿐이다. 오지를 다니면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며 경험과 사유를 넓히는 작가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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