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다이스 ]
현재 호서대학교 미술대학교 현직교수로 재직중인 하판덕교수의 작품은
그림의 확정적이고 고정된 틀을 깰 필요성을 강조하며
민화의 형식을 차용했으며 민화에서 등장하는 사물들을 모순되고 상충되게
그려냄으로써 통일성이나 균형, 평형보다는 산란함, 불균형, 비평형을 통해
행복을 염원하는 보통 사람들의 상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민화적 소재를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과
동양화의 재료적인 특성을 뛰어넘어서 자기만의 입체 재료를 고안한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고 거친 듯 물감이 흘러내려 도약과 꿈을 표현한
자유로운 우연성이 많이 강조된 느낌을 발휘한다.
그에게 있어 예술표현은 인간생활에 존재하는 여러 요소들이 독립된 자아와
결합하여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 재구성되거나 상징화로 해석된다.
또한 작품 속 소재는 새로운 형상과, 기술적인 단계를 넘어서
심리적인 영혼의 빛으로 작가의 이상향을 표현해 내고 있다.
[작가노트]
솔직하나 유치한 민화의 형식을 차용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래야 할 이유는 화법을 넘어 마음의 법을 다루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그림의 확정적이고 고정된 틀을 깰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대신 만유일체를
마음의 법으로 새김해야 할 것을 제기한다.
가령, 민화를 보자면 사물들이 당장에는 서로 모순되고 상충되게 그려져 있다.
통일성이나 균형과 평형보다는 산란함과 불균형, 나아가서는 비평형의 세계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참이란 바로 이러한 산란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작가는 생각한다.
민화의 형식과 내용이 이렇게 해서 궤를 달리하여 하판덕의 그림들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가 민화의 예를 차용하거나 유추함으로써 자신의 그림세계를 일구려한다고 하였지만
차용과 유추보다 더 적극적인 의의가 그의 해법을 지탱해 주고 있다고 믿어진다.
그림이란 것의 실체를 탈취함으로써 그림 자체를 기호화 하고자 한다는 것으로 직시할 수 있다.
그림의 실체의 폐기와 그후의 기호화는 진리 또는 참 자체가 실재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역으로 말하자면 참 자체가 존재한다든지 존재에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흔적이거나 기호로서 이해된다는 것이다.
참의 이해에 대한 유비로서 접근해 보려는 하판덕의 해법은 그림을 하나의 기호체계로 간주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참의 이해가 애매성에 필연적으로 봉착하려는 것과 그림의 해법이 애매성에 직면할 운명이
같은 수준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것들에서 공통되게 찾아지는 애매성이란 논리적으로 동형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판덕은 민화의 시사를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을 마음의 법으로 세계를 읽으려는 것의 표본모델로
간주함으로서 그림의 제작에 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