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의 대가인 남관(南寬)(1911-1990)
고향서 환대받는 '남관특별展' 연장 전시
청송군, 전시회 호응도 좋아
내달 10일까지 연장하기로
묵상·흑백상 등 걸작 전시'남관특별전 고향에 돌아오다' 'NAMKWAN-청송의 특별한 이야기 전시회'가 11월10일까지 특별 연장된다.
경북 청송군은 청송군 부남면 출신인 세계적인 화가 남관 화백의 화업을 기리고
남관 화백의 작품이 가진 한국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8월13일부터 청송군 부남면 소재 남관생활문화센터 내 전시실에서 '남관특별전'을 열고 있다.
특별전 개최 후 약 2개월간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전시회에 대한 호응도와 장기 연장 요청으로 특별전을 연장하게 됐다.
남관 화백은 파리국립미술관장 가스통 디일(평론가)로부터 동·서양을 아우르는
유일무이한 대화가라고 찬사를 받을 만큼 세계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남관특별전에는 1940년대 '호박'(1945)과 '향원정'(1947)을 비롯해 1954년 도불 이후
추상적 미술 양식을 보였던 '파리에서'(1955)와 1966년 망퉁회화비엔날레 대상 수상 작품과 같은 화풍의
'밤풍경'(1961), '독백'(1962), 귀국 후 제작된 작품 '옛 형태'(1972), '묵상'(1978), '인물'(1988)등
평소 보기 힘든 소중한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또 '흑백상'(1984)은 가로 720㎝의 대형 작품으로 남관의 예술 생애에 있어
최고 절정기에 이른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작품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수묵 드로잉과 50년대 수채화 등 30여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올 한 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에
남관 화백의 작품(가을축제)이 포함돼 전시 중이어서
남관 화백과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편 전시회 관람 시간은 매주 화~일요일(월요일 휴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문자추상]
<평론>
유재길. 남관의 드로잉. 현대갤러리 전시도록 1995.7.11-21
I.
남관은 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동양화 붓이나 싸인 펜, 연필 등으로 그린 얼굴들과 마스크, 인물 군상들이 있고,
비둘기나 기러기 그림과 파리 풍경을 그렸다.
우연한 효과를 실험한 앙포르멜 작업과 도안화 된 얼굴 스케치가 있으며,
판화 작품이나 유화의 밑그림처럼 보이는 상형문자 추상화도 보인다.
작은 드로잉 하나하나에 작가는 작품 구상에 관한 단어들과 날짜, 싸인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완결성이 뛰어난 그의 드로잉은 습작이 아닌 완성된 작품처럼 보인다.
작품에 관한 기록과 완결성. 이것은 드로잉뿐만 아니라 유화작품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며,
작가의 생명처럼 느껴진다.
1970년 필자는 홍익대학에 재직하셨던 선생님 지도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선생님의 말씀 중에 가장 기억되는 것이 화면 구석구석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화면 구성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주제를 생각하고 인간의 이미지를 그릴 때,,
그것은 존재하는 바탕을 중요시하면서 매사에 꼼꼼히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는
이 시대에 필요한 예술론이다.
인체를 그리는데 있어서도 부분 묘사보다 전체를 중요시하라는 것과
싸인하는 위치까지 작품이라고 생각하라는 것 등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II.
남관의 회화적 드로잉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그려진 형상들의 이미지 표현이다.
그의 드로잉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타난다.
무리진 인간의 군상과 자연풍경이 있고, 해와 달, 그리고 별들과 구름, 나무,
산 등 서정적이며 시적인 분위기로 그려진다.
드로잉의 배경은 더욱 추상화된 공간이면서 주제가 되는 대상은
사실적 묘사와 함께 상징적 기호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드로잉은 예술세계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바탕이 되는 종이 속으로 스며든 푸른색과 붉은 색의 얼룩들,
그 위에 순간적 충동으로 그려진 듯한 심상의 이미지는 경쾌하면서도 깊이를 지닌다.
그의 드로잉은 밝음과 선명함이 생명처럼 느껴지며,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얼룩들은 비록 어둡지만 화면과 밀착되어
시공을 초월한 내면의 역사처럼 보인다.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조화롭게 평면 위에 형상화하는
남관의 드로잉은 어린아이보다 더 순수한 자유인의 의지로 해석된다.
인물
한편 그의 드로잉은 페인팅과 달리 서술적이며 즉흥성이 중요시된다.
선묘로 나타나는 인간과 자연 이미지는 주제를 명확히 하면서 즉흥적으로 그려진다.
대부분 인간을 모티브로 단순하게 그려진 형상들은 무거운 구성의 틀에서 벗어나
가볍고 자유로운 표현이다.
즉흥적으로 그려진 인간군상은 서예처럼 가필이 없는 선묘이다.
단순하며 순간적 결정의 형상들은 화면에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인간 형상은 페인팅보다 더 사실적이며, 즉각적 인상 표현이다.
손과 손을 잡은 군상이나 두팔을 벌린 인간상은 결코 어두운 과거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처럼 드로잉에 나타난 군상의 역동적 움직임 묘사는 페인팅과 달리
희망이 있는 낭만적 성격이 강하다.
작가 자신의 말처럼 캔버스에 그려진 ‘인간상’은 전쟁과 억압 속에서
상처받은 비극적 인간의 형상을 생각하게 하나,
드로잉에 나타난 ‘인간 군상’은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축제 분위기인 것이다.
재현적 배경이 아닌 드로잉의 순수한 표면은 마음의 거울처럼 비쳐지는 배경이며,
무한대의 공간 표현이다. 또한 드로잉의 배경이 되는
상형문자와 같은 변형된 사각형의 구축 공간은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가 배경으로 삼은 이러한 사각형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닫혀진 삶의 현실에서 심리적 탈출구와 같은 상상의 공간인 것이다.
자연 풍경처럼 보이는 드로잉의 배경과 상형문자로 구축된 초월적 공간 속에
인간이나 동식물의 이미지 형상이 없다면 그의 드로잉은 완벽한 추상표현주의 회화이다.
드로잉의 배경은 유화와 달리 두터운 마티에르가 없어 감정 노출이 즉흥적으로 일어난다.
겹쳐진 색조의 변화가 많으며, 푸른색과 붉은 자주색, 그리고 흰색의 여백은 색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려는 평면적 추상회화이다.
배경에 등장한 상형문자 형태, 역시 드로잉에서는 순수한 색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평면인 것이다.
III.
그의 드로잉은 자연과 꾸준한 대화를 나누는 인간중심의 휴머니즘 예술이다.
결코 드로잉이 단순한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의미하거나 양식적 특성을 살리는 유형의 습작이 아니다.
더욱이 여가를 위한 유희나 대작을 위한 밑그림이 아니다.
순간적 표현으로 경쾌하면서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살아 숨쉬는 그림이 남관의 드로잉이다…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서 추상화의 선각자로 불리는 남관이 자신은 추상화가가 아니라고 자주 언급한다.
이것은 하나의 서구 현대미술사조에 자신을 얽매이기 보다 독자적으로 자유롭기를 원하는 예술가의 독백이다.
이에 관한 구체적 증거는 그의 드로잉이다.
그의 많은 드로잉에서 볼 수 있듯이 추상적인 공간과 함께 인간이 등장하면서 추상과 구상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다…
남관(南寬·1911-1990)
출생1911. 11. 25. 경상북도 청송
사망1990. 3. 30.
수상1990년 제35회 대한민국 예술원상1981년 은관문화훈장1974년 제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미술부문
경력~1977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운영위원회 위원 1968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양화 심사위원회 위원장
작가 남관은 인간을 닮은 문자추상과 휴머니즘적 정신세계의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입니다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나왔고, 1950년대 중반에 프랑스로 가서 수학하고
현지에서 가장 인정받은 세계적인 예술가로서 활동한 그의 선각자적 위치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한 1966년 유서 깊은 망퉁비엔날레에서 파블로 피카소, 쟝 뒤뷔페, 안토니 타피에스 등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파리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이태리, 스위스 등 세계곳곳의 유명미술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가장 잘 이루어냈다는 찬사를 듣는 작가,
남관에 대해 프랑스 파리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베르나르 도리발은
‘서양적 화법으로 동양의 에스쁘리(Esprit)를 부각시키는 화가’라고 평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 자신의 근원과 함께 다른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조화하려는 끊임없는 고뇌와 노력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작가는 설명합니다. “예술행위란 지극히 내면적인 것입니다.
특히 조형예술의 경우는 더욱 그러한 것으로 제 경우는 내 사의를 격렬하게 퍼붓는 긴요한 장소가 됩니다.
기쁨, 분노, 서러움, 고독, 각기 특유한 사연과 관념을 가진 언어들이지만
이 같은 사건을 한참 동안 쏟아놓고 나면 거사를 끝낸 미치광이처럼 잠잠해지고
화폭에 나타난 꼴은 내 생각의 부스러기들이 흥건히 배어있습니다.” (남관화백 2년만의 작품전. 동아일보. 1983. 5. 31)
남관은 자신의 작품을 추상화의 범주에 구속시키거나 동양화나 서양화로 분리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는 작품은 그냥 자기 자신의 경험이며 사는 얘기라고 합니다.
‘ “작품은 바로 사람”라고 주장하는 그는 구상이니 추상이니 하는
유파의식을 고집하는 것은 넌센스며 어떠한 형식이든 체험을 통해
발견한 자기내면의 세계를 충실히 표현하는 것이 미술가내지 예술가의
본분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남관화백 소품전. 동아일보. 197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