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소 ]
이 판화작품은 오리지널 원화 하단에 세월의 흔적으로 자연스럽게 물감이 떨어져 있는데
판화 작업시 색을 넣고 보정하지 않은 상태인 원화 그대로 제작하여 물감 떨어짐이나
크랙난 상태의 원작에 최대한 똑같이 제작한 흔치 않은 에디션 한정판 판화입니다
1956년 무렵 소는 중등 과정부터 즐겨 그리던 그림의 소재였다고 동창들은 전한다.
소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과 소로 상징되는 민족과 현실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의 그림 '황소'는 35억 ~ 45억원 가격대로 경매에 오르기도 했는데 ,
정작 생전에는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속 은색 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화가 이중섭.
그런데도 그의 그림에는 한결같이 힘이 넘쳐난다.
언젠가는 가족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일 테다.
소와 아이들, 그리고 가족을 유난히 많이 그렸던 화가 이중섭.
아마도 '천재 화가'보다는 '남편'과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그에게는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이중섭
출생1916. 평안남도 평원
사망1956. 9. 6.
데뷔
1941년 미술창작 작가협회전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1978
은관 문화훈장
1937
자유미협전 태양상
1952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 단원
1950
원산 신미술가협회 회장
1946
원산사범학교 미술교사
화가 이중섭의 프로필을 보면 1916년 출생해 1956년 타계한 것으로 나온다.
그는 불혹에 영면했지만,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이중섭이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큰 의미가 있다.
이중섭의 작품세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건 1935년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 강렬하면서도 틀에 박히지 않은 선을 나타내는
그의 작품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중섭은 훗날 부인이 된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난다.
1944년 연인 마사코와 한국에서 혼례를 올린 이중섭은 첫 아이를 얻으면서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첫 아이를 병으로 잃고 그에게는 시련이 닥쳐왔다.
화가라는 직업은 늘 궁핍하고 외로운 것이기에,
이어서 태어난 두 아들에게 그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중섭과 그의 가족은 전국을 떠도는 피란민이 되었다.
이중섭이 부산과 맺은 인연도 바로 이 시기였다.
생활고와 피란생활을 못 이긴 마사코는 결국 두 아들과 함께 고향인 일본으로 가게 되고,
이후 이중섭은 그리움을 잊기 위해 작품 활동에 몰두하다가 1956년 서울에서 숨을 거뒀다.
1931
오산고등보통학교
평양종로공립보통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