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작가의 작품 특징은 세세하고 디테일한 부분은 과감히 걷어내고 야성적이고 매우 선명한 색깔과 풍부한 내면적 표현력이 압도적이다. 치열한 원시림의 색상... 원색의 붓질에서 오는 풍성한 기교와 담대한 표현력에 담긴 다양한 시각언어는 인생의 깊이감이 함축되어 있어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힘이 있다.
“원색조의 그림들은 사랑·추억 같은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 원색으로 함축하고 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김경희 작가의 작품은 색채 표현이나 붓질에 있어서 샤갈만큼이나 환상적이다.
김 작가가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인상적으로 혼합해서 쓴 빨강과 녹색 꽃의
격렬한 조합은 작가의 뜨거운 내면을 보여준다.”
▶이종순 월간 미술문화 편집국장
“김경희의 작품은 원색조의 그림으로 사랑과 추억, 기다림 같은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기에 그 향기는 더욱 짙다.”
▶저우경신 중국 장쑤성 미술가협회 주석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사랑의 온도가 있는 치열한 사랑을 볼 수 있다.
그의 예술언어 속에 숨어 있는 꿈의 날개도 볼 수 있다.”
[ 고궁의 가을 ]
미술 평론가가 회고했다.
원색을 대담하게 쓸 줄 아는 화단의 기린아가 나타났다.
화가로서 북촌시대를 활짝 꽃 피울 작가라고... 그림세계 편집장에게 그를 주목하라고…
김경희 작가는 12회의 개인전과 300여회의 그룹전을 가진 중견 서양화가로
한양대학교를 나와 20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하였다.
일찍이 대학 4학년 때 쟁쟁한 화가들과 함께 국전에서 수상을 하여
미술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김경희
1948~
현대미술관
조선화랑
신세계미술관
서울아카데미회원전,
서울갤러리
울산 김민제미술관
롯데미술관
서림화랑
서울갤러리
롯데미술관
박여숙화랑
예술의전당
흙에 그린 화가의 마음전
울산 김민제미술관
수채화작가회전
서울아카데미회원전
상형전, 미술회관
한일 현대구상회화전
롯데미술관
화랑미술제
예술의전당
구상작가 오늘의 상황전
롯데미술관
소품50인전
서림화랑 개관기념전
울산 김민제미술관
100인의 드로잉초대전
서울갤러리
한국풍경화가회 회원전
롯데미술관
한국미술협회전
국립현대미술관
수채화 6인전
박여숙화랑
아름다운 서울풍경전
롯데미술관
한국의 4계절
아랍미술관
88올림픽기념35인전
서울갤러리
수채화 6인전
박여숙화랑
한국사생회원전
아랍미술관
한국수채화 작가회 회장
[출처] 前 건국대 이사장 김경희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 초대전 - 미학의 세계를 찾을 수 있는 기회 | 작성자 송승호
저자는 대학 재학 중에 이미 국전에서 수상하는 화력(畵力)을 과시하였습니다.
대학에서는 ‘5월의 여왕’인 ‘메이퀸’에 선발될 정도로 지성과 미모를 갖춘 소위 ‘에이스’ 여학생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즈음에 ‘말을 탄 기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 하려던 유학 준비를 포기하고 더구나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석창 재단 이사장의 맏아들과 결혼하게 되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유석창 이사장(1900-1972)은 독립운동가로서 우리 사회에 큰 기여를 한 어른이십니다.
그 분이 타계하셨을 때 국가에서는 사회장으로 추서하였습니다.
사회장은 국가원수의 국장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에서 기리는 장례입니다.
건국대에는 학문의 보고인 도서관을 ‘상허도서관’으로 명명하여 선생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밝히고 있습니다.
필자는 상허 선생의 창학 정신을 기리는 ‘상허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가진 바 있습니다.
어느 덧 20대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도 잠시,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여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신부가 겪어야 할 운명은 너무나 야속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황망함을 탈출하기 위하여 어린 두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화가로서의 새 삶을 구현하기 위한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멋진 분을 조우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마저 떠난 아이들이 정상적인 성장이 어렵게 되자,
홀연히 미국을 떠나 가회동으로 귀향하여 오늘날까지 그 가회동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남편의 뒤를 이은 시동생이 재단 이사장을 맡았지만,
불의의 사고와 사망에 따라 가정주부 생활만 하던 저자가 1994년 평이사로 취임한 이후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마침내 2001년 건국대 이사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그 후 17년간 이사장으로 재임하다가 큰 따님에게 이사장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건국대학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성과는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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